울산 아파트 화재 현장에 쌓인 쓰레기 산(울산=연합뉴스) 장지현 기자(울산=연합뉴스) 장지현 기자


울산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재로 숨진 70대 주민이 베트남전 참전 국가유공자인 것으로 확인되면서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습니다.

29일 울산소방본부 등에 따르면 28일 오후 6시 56분쯤 남구 달동의 10층짜리 아파트 7층의 한 세대에서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화재 당시 소방관들이 현관문을 개방하자, 집 안에는 쓰레기가 성인 키 높이까지 쌓여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곳에 살고 있던 70대 남성 A씨는 높이 쌓인 쓰레기 더미 위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졌습니다.

출입 통제 중인 울산 아파트 화재 현장(울산=연합뉴스) 장지현 기자(울산=연합뉴스) 장지현 기자


A씨는 이 아파트에서 20년 가까이 홀로 지낸 주민이었습니다.

월남전 참전 유공자였던 그는 매달 정부로부터 월 45만원 수준의 참전명예수당을 받아왔습니다.

오랜 기간 집안에 쓰레기를 쌓아두는 생활을 이어오던 그는 불이 난 집에서 미처 벗어나지 못했고, 결국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웃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A씨는 수년 전부터 집 안에 쓰레기와 폐가전, 옷가지 등을 쌓아두는 '저장강박' 증세를 보였습니다.

밖에 나갔다가 돌아올 때마다 비닐봉지에 갖가지 쓰레기를 담아 들고 오는 모습이 반복적으로 목격됐습니다.

한 이웃 주민은 "우리 눈에는 쓰레기지만 본인에게는 중요한 물건이라고 여긴 것 같다"고 증언했습니다.

주변의 개입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은 "몇 년 전 한 차례 아파트 경비를 들여 쓰레기를 모두 치우고 도배와 장판까지 새로 해준 적이 있었다"며 "하지만 이후 다시 쓰레기가 쌓이기 시작했고, 정리를 요구하자 '법대로 하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습니다.

구청과 동 행정복지센터에서도 여러 차례 찾아와 정리를 권유했지만, 당사자가 강하게 거부해 제도적으로 강제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일부 지자체에는 저장강박 의심 가구를 지원·관리하는 조례가 마련돼 있지만, 이번 화재가 난 울산 남구에는 관련 제도적 근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울산 아파트 화재 현장<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소방시설 사각지대도 이번 화재가 참변으로 이어진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됐습니다.

불이 난 아파트에는 각층에 옥내소화전이 1개씩 설치돼 있을 뿐, 화재를 감지해 자동으로 물을 뿌려주는 스프링클러가 없었습니다.

이에 소방당국은 해당 아파트가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 대상이 아니라고 설명했습니다.

현행 소방시설법에 따르면, 이 아파트는 총 10층으로 준공 시 스프링클러 설치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나 1996년 사용승인 당시에는, 16층 미만 공동주택에 설치 의무가 없었습니다.

이후 법 개정을 통해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가 단계적으로 확대됐지만, 개정 이전에 만들어진 아파트까지 소급 적용하지 않아 노후 공동주택 상당수가 여전히 스프링클러 없이 방치된 경우가 많습니다.

소방청이 지난 6월 공개한 '전국 노후 아파트 현황'에 따르면, 준공 후 20년이 지난 전국 노후 아파트 9천894 곳 중 4천460곳(45.1%)에 스프링클러 설비가 설치돼 있지 않았습니다.

연합뉴스TV 기사문의 및 제보 : 카톡/라인 jebo23

전소미(jeonsomi@yna.co.kr)

당신이 담은 순간이 뉴스입니다!

ⓒ연합뉴스TV,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