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관-러트닉 관세협의[산업통상부 제공][산업통상부 제공]미국의 전방위적 압박 속에 일본이 먼저 대미 투자 1호 프로젝트를 확정하면서 우리 정부의 움직임도 한층 빨라지고 있습니다.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박정성 산업부 통상차관보를 단장으로 한 실무 협상단이 오늘(18일) 미국으로 출국했습니다.
박 차관보 등은 미국 상무부 관계자들을 만나 대미 투자 프로젝트 후보 사업과 상업적 타당성, 추진 절차 등을 집중적으로 협의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번 실무단 방미는 늦어도 다음 달 초로 예상되는 대미투자특별법의 국회 통과 이후 신속하게 사업 이행에 착수하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으로 풀이됩니다. 법안이 처리되는 즉시 투자 프로젝트를 구체화할 수 있도록 실무 차원에서 후보군을 압축하고, 미국 측과의 이견을 미리 조율하겠다는 취지입니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체코 두코바니 원전 출장을 마친 이후 국내에 머물며 대미 투자 협상을 총괄하고 있습니다.
카운터파트인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과는 대면뿐만 아니라 화상회의를 통해 수시로 의견을 교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번 차관보급 실무 협의에서 일정 수준의 공감대가 형성될 경우 장관급 회의를 통해 대미 투자 프로젝트가 구체적으로 윤곽을 드러낼 가능성도 거론됩니다. 현재 한국은 대미투자특별법이 아직 국회를 통과하지 않아 대미투자펀드 및 협의위원회가 구성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법적 기반이 완비되지 않은 상황이지만 정부는 산업부를 중심으로 관계 부처와 국책 금융기관 등이 참여하는 임시 추진체계를 가동해 투자 후보 프로젝트를 사전에 점검하고 있습니다.
행정부 차원에서 유력 후보 사업을 사전에 확정해 놓고 법안 통과 이후 공식 기구를 통해 이를 추인·확정하는 방식으로 속도를 낼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이처럼 정부가 미국과의 협의에 속도를 내는 배경에는 일본의 대미 투자 1호 프로젝트 확정으로 미국이 한국에도 당장 구체적인 대미투자 계획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7일(현지시간) 일본의 대미 투자와 관련한 첫 번째 프로젝트 3개를 발표했습니다. 일본이 미국과의 관세 합의에 따라 약속한 5,500억달러(약 796조원) 대미 투자 가운데 첫 사업이 확정된 것입니다.
총 360억달러(약 52조원) 규모의 1차 프로젝트 가운데 대부분인 330억달러가 오하이오주에 들어설 가스 화력발전소 건설에 투입됩니다.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은 해당 시설이 9.2기가와트(GW)의 전력을 생산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는 원전 9기가 생산할 수 있는 전력량이자 미국의 약 740만 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규모입니다. 러트닉 장관은 "이에 따라 전력망 안정성을 강화하고 에너지 비용을 낮춰 미국 제조업을 지원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오하이오주 포츠머스에 건설될 330억달러의 가스 화력 발전소로 미국에서 발표된 역대 최대 규모 발전 프로젝트 중 하나"라고 평가했습니다. WSJ은 상무부 관계자들을 인용해 소프트뱅크 자회사 SB에너지가 사업을 주도할 예정이라고 전했습니다.
최근 미국은 인공지능(AI) 산업 확산과 데이터센터 급증으로 전력 수요가 가파르게 늘고 있습니다. 빅테크 기업들이 초대형 데이터센터를 경쟁적으로 짓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발전 설비와 송배전망은 충분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일본이 첫 투자 대부분을 가스 발전소에 집중한 것은 미국이 현재 가장 절실히 원하는 것이 대규모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전력 인프라 건설이라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블룸버그통신은 "AI 붐으로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폭증하는 상황에서 시의적절한 투자"라고 평가했습니다.
나머지 2개 프로젝트 역시 미국의 전략적 이해와 맞닿아 있습니다.
두 번째는 멕시코만 심해 원유 수출 시설 건설 사업입니다. 미국산 원유 수출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사업으로, 에너지 주도권 강화와 직결된 프로젝트입니다.
마지막으로 조지아주에는 첨단 반도체와 방산 물자에 필수적인 합성 산업용 다이아몬드 생산 시설이 구축됩니다.
러트닉 장관은 이에 대해 외국 공급망에 대한 어리석은 의존을 끝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중국이 장악한 희토류 등 핵심광물 공급망에서 벗어나 미국 내에서 자체 조달 능력을 갖추겠다는 의도입니다.
일본의 대미 투자 프로젝트가 구체화하면서 아직 첫 사업을 확정하지 못한 한국에 대한 미국의 압박도 한층 거세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이른바 '트럼프 격노설'이 제기된 가운데 일본은 아카자와 료세이 경제산업상을 지난 12일 미국에 파견했지만 합의에 이르지는 못했습니다.
이 때문에 양국이 투자 분야와 세부 조건을 둘러싸고 협상에 상당한 진통을 겪을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1차 프로젝트가 예상보다 빠르게 확정된 것은 미국의 압박이 그만큼 강하게 작용했음을 보여준다는 해석이 나옵니다.
한국 역시 지난해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3,500억달러(약 505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 계획을 약속한 상황입니다.
한국이 약속한 3,500억달러 중 조선업 전용 1,500억달러를 제외한 나머지 2천억달러 투자는 양국의 경제 및 국가안보 이익을 증진시키는 분야에 하기로 했습니다.
양국은 '한미 전략적 투자 양해각서(MOU)'에서 대미 투자 분야로 에너지, 반도체, 의약품, 핵심광물, 인공지능(AI), 양자컴퓨팅 등을 언급한 바 있습니다.
2천억달러 투자 분야는 미국 대통령이 미국 상무장관이 위원장인 투자위원회의 추천을 받아 선정하되, 투자위원회는 사전에 한국의 산업통상부 장관이 위원장으로 있는 협의위원회와 협의해 상업적으로 합리적인 투자만을 미국 대통령에게 추천하도록 했습니다.
궁극적인 투자처 결정권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있는 구조에서 1호 대미 프로젝트는 일본 사례와 마찬가지로 발전, 에너지, 핵심광물 등 미국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반영된 분야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힘을 얻습니다.
관건은 미국과의 협상에서 한국의 산업적 이익을 얼마나 반영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한국은 원전 건설 경험과 LNG 발전, 신재생에너지, 전력 기자재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대형 플랜트 건설 경험과 통합 운영 능력도 강점으로 꼽힙니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전략적 이해관계와 국내 산업의 실익, 핵심광물 공급망 강화를 동시에 고려한 정교한 선택이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산업부 관계자는 "에너지 개발과 전력 인프라 분야는 대규모 자금이 투입되는 데다 미국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영역"이라며 "미국 입장에서는 해당 분야가 최우선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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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준영(kwak_k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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