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왼쪽)과 만난 모하메드 레자 팔레비(오른쪽) 이란 국왕[DPA=연합뉴스 자료사진 제공][DPA=연합뉴스 자료사진 제공]


최고 지도자인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의 죽음으로 이어진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에 맞서 '강력한 보복'을 선언한 이란군의 주력 전투기는 뜻밖에 톰 크루즈 주연 1986년 할리우드 영화 '탑건'에 등장한 미국산 F-14 톰캣입니다.

냉전 시기 미 해군 F-14는 그야말로 당대 최고의 전투기로 통했습니다.

당시 미국은 중동의 '친미 보루'인 이란 팔레비 정권에만 동맹국 중에서도 유일하게 최첨단 F-14를 제공했는데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집권한 '신정 정권'이 이를 그대로 이어받아 주력 전투기로 쓰고 있습니다.

미국은 '장대한 분노'(Epic Fury)로 명명된 이번 이란 공격 작전에 F-22, F-35 등 최첨단 스텔스 전투기들을 대거 투입했습니다.

신·구세대 미국 간판 전투기 간의 대치 상황은 냉전 시기 긴밀했던 동맹 관계에서 '불구대천'의 원수 관계로 변모한 미국과 이란의 70년 역사를 압축적으로 상징합니다.

미국과 이란의 '밀월' 관계가 형성되기 시작된 것은 1920년대 팔레비 왕조의 시작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군인이던 레자 칸이 쿠데타로 1700년대 후반부터 이어져 온 카자르 왕조를 무너뜨리고 1925년 팔레비 왕조를 세우자 중동 원유에 눈독을 들인 자국의 중동 영향력 확대의 발판을 마련하고자 팔레비 정권을 적극적으로 지원했습니다.

1950년대 이란 내부의 정치 격변은 미국과 팔레비 왕조의 관계를 동맹 수준으로 획기적으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됐습니다.

반외세와 민족주의를 내세워 집권한 모하마드 모사데크가 총리는 왕권을 약화하고 석유산업을 국유화하는 등 행보에 나섰고, 미국에서는 이란이 소련의 품으로 기우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증폭됐습니다.

미국 아이젠하워 행정부는 1953년 영국과 함께 팔레비 왕조의 힘을 키워주는 이란 내 쿠데타를 지원했습니다.

미국의 지원으로 강력한 힘을 되찾은 팔레비 왕조는 1959년 미국과 군사 안보 협력을 시작하는 등 강력한 친미 노선을 택했습니다.

이후 모하메드 레자 팔레비 국왕이 이끄는 이란은 냉전 시기 중동의 핵심 '친미 보루'가 됐습니다.

석유와 F-14 같은 최첨단 무기로 결속된 미국과 이란의 관계가 결정적으로 틀어진 것은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팔레비 왕조가 축출되고 이란에 아야톨라 호메니이 주도의 '신정일치 체제'가 들어서면서부터입니다.

1979년 11월 벌어진 이란 대학생들의 테헤란 미 대사관 점거 사건은 미국과 이란의 관계를 본격적인 적대 관계로 몰아넣는 계기가 됐습니다.

국외로 도주한 팔레비 국왕 모하마드 레자가 암 치료를 이유로 미국에 입국했는데, 이란의 혁명지도부는 신병을 인도할 것을 요구했고 미국은 이를 거부합니다.

이에 분노한 이란 대학생들이 1979년 11월 테헤란 주재 미 대사관을 점거한 뒤 미국인 외교관과 직원 52명을 억류한 겁니다.

인질 사태가 길어지고 대선이 다가오자 카터 미 행정부는 이듬해 4월 육군 최정예 특수부대인 델타포스 등을 동원한 '독수리 발톱' 작전을 감행했지만 장병 8명만 사망한 채 실패했고 이는 미국에 큰 충격을 줬습니다.

1981년 1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인질들이 풀려났지만 이 사건으로 이란과 미국은 국교를 끊었습니다.

미국인들의 머릿속에 이란은 '적대국'으로 선명하게 각인됐습니다.

1980년부터 8년간 이어진 이란-이라크 전쟁은 양국 갈등을 더 극한으로 몰아넣었습니다.

반미 이슬람주의의 확산을 우려한 미국은 이란의 적인 이라크를 직·간접적으로 지원했습니다.

이란이 중동 각지에서 '저항의 축'으로 불리는 대리 세력 키우기에 나서고, 2003년부터 수면 위로 오른 핵무기 개발 문제까지 겹치며 미국에 이란은 단순한 적대국을 넘어 지역과 본토 안보를 위협하는 핵심 위협 세력으로 인식됐습니다.

이에 1996년 8월 미국은 이란과 리비아를 테러 지원국으로 분류, 이들 국가의 원유와 가스 개발 투자를 금지하는 법을 발표하면서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에 착수했습니다.

또 2002년에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이란을 이라크, 북한과 함께 '악의 축' 국가로 지목하면서 양국 관계는 또 한 번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았습니다.

2009년 출범한 버락 오바마 행정부 들어서는 미국과 이란의 갈등 완화가 잠시 시도되기도 했습니다.

대이란 관계 개선을 모색하던 오바마 대통령이 2013년 온건파로 분류되는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과 통화를 계기로 양국 간 핵 문제 해결 논의가 이어졌습니다.

이어 2015년 7월 극적으로 7월 협상이 타결됐습니다.

이란이 우라늄 농축 등 핵무기 관련 작업을 중단하면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이 단계적으로 경제제재를 푼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가 마련된 겁니다.

그러나 미국과 이란의 관계 개선 흐름은 2017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다시 끊어졌습니다.

오바마 행정부의 중동 정책을 폐기한 트럼프 행정부는 2018년 5월엔 이란 핵 합의 파기를 선언하고서 경제 제재를 부활시키며 양국 관계는 다시 최악으로 치달았습니다.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인 2020년 1월 미국은 이란혁명수비대(IRGC) 최정예 쿠드스군 사령관이었던 가셈 솔레이마니를 암살 작전으로 제거했습니다.

이어 작년 6월엔 이란의 포르도, 나탄즈, 이스파한 등 이란 내 3곳의 주요 핵시설을 B-2 스텔스 폭격기 등을 동원해 파괴하는 '미드나잇 해머' 작전을 벌이며 다시 한번 무력을 과시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이란 대공습의 목표가 이란 정권을 무너뜨려 50년 가까이 이어진 이란과의 적대 역사를 종식하는 데 있다고 사실상 선언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개전 직후 올린 '선전포고' 성격의 영상에서 이란 국민들에게 정권 교체에 나설 것을 촉구하면서 이번 전쟁의 목표가 이란 '신정 정권' 종식에 있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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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효인(hij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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