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안보 핵심' 주한미군 때마다 '감축'
[앵커]
주한미군은 한반도 안보의 핵심적 역할을 하는 만큼 감축 문제는 때로 두 나라의 갈등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주한미군 감축의 역사를 김지수 기자가 되짚어봤습니다.
[기자]
1945년 9월 한국에 들어온 주한미군은 한동안 7만 명 선을 유지하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인 1949년 사실상 완전 철수했습니다.
하지만, 이듬해인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했고, 돌아온 미군은 휴전 후에도 상당 기간 6만 명 이상의 병력을 주둔시켰습니다.
이후 베트남 전쟁을 계기로 주한미군의 2차 철수가 시작됐습니다.
베트남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던 리처드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이 아시아 국가가 스스로 안보를 책임져야 한다는 '닉슨 독트린'에 따라 주한미군 철수를 결정한 겁니다.
이에 따라 1971년 3월, 미군 7보병사단 2만 명이 철수했고 주한미군은 4만 3천 명 규모로 축소됐습니다.
이어 들어선 카터 정권에서도 흐름은 이어졌고 1978년과 1979년 2차례에 걸쳐 3,500명의 미군이 한국을 떠났습니다.
북한의 땅굴이 발견되면서 추가 철수는 보류됐지만, 1980년대 이후 불어닥친 데탕트의 물결은 3차 철수로 이어졌습니다.
1990년 부시 당시 대통령은 이전해까지 4만 4천 명에 이르던 주한미군을 3단계에 걸쳐 2만 명 수준까지 줄이겠다고 발표했고 실제로 일부가 철수했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계획은 1994년 북한 핵 문제가 대두되면서 없던 일이 됐습니다.
이후 주한미군은 부분 조정을 거쳐 현재 2만 8천여 명 규모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뉴스Y 김지수입니다.
연합뉴스TV 제보:02-398-4409, yjebo@yna.co.kr
(끝)
[앵커]
주한미군은 한반도 안보의 핵심적 역할을 하는 만큼 감축 문제는 때로 두 나라의 갈등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주한미군 감축의 역사를 김지수 기자가 되짚어봤습니다.
[기자]
1945년 9월 한국에 들어온 주한미군은 한동안 7만 명 선을 유지하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인 1949년 사실상 완전 철수했습니다.
하지만, 이듬해인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했고, 돌아온 미군은 휴전 후에도 상당 기간 6만 명 이상의 병력을 주둔시켰습니다.
이후 베트남 전쟁을 계기로 주한미군의 2차 철수가 시작됐습니다.
베트남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던 리처드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이 아시아 국가가 스스로 안보를 책임져야 한다는 '닉슨 독트린'에 따라 주한미군 철수를 결정한 겁니다.
이에 따라 1971년 3월, 미군 7보병사단 2만 명이 철수했고 주한미군은 4만 3천 명 규모로 축소됐습니다.
이어 들어선 카터 정권에서도 흐름은 이어졌고 1978년과 1979년 2차례에 걸쳐 3,500명의 미군이 한국을 떠났습니다.
북한의 땅굴이 발견되면서 추가 철수는 보류됐지만, 1980년대 이후 불어닥친 데탕트의 물결은 3차 철수로 이어졌습니다.
1990년 부시 당시 대통령은 이전해까지 4만 4천 명에 이르던 주한미군을 3단계에 걸쳐 2만 명 수준까지 줄이겠다고 발표했고 실제로 일부가 철수했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계획은 1994년 북한 핵 문제가 대두되면서 없던 일이 됐습니다.
이후 주한미군은 부분 조정을 거쳐 현재 2만 8천여 명 규모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뉴스Y 김지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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