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보도 뉴스프리즘] 과잉 규제 VS 필수 법률 'n번방 방지법' 사실은?
[오프닝: 이광빈 기자]
시민의 눈높이에서 질문하고, 한국 사회에 화두를 던지며,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 가는 <뉴스프리즘> 시작합니다! 이번 주 <뉴스프리즘>이 주목한 이슈, 함께 보시죠.
[영상구성]
[이광빈 기자]
지난주 금요일부터 이른바 'n번방 방지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됐습니다.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이나 대형 커뮤니티 등에는 불법 촬영물을 올리지 못하도록 필터링 기능이 적용됐는데요. 이를 두고 사전 검열이라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김예림 기자입니다.
["고양이 영상도?" "가짜뉴스"…뜨거운 n번방 방지법 / 김예림 기자]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 성착취 동영상을 텔레그램을 통해 유포한 'n번방'과 '박사방' 사건.
피해자들을 '노예'라고 부르고 신상 정보까지 노출하는 등 반인륜적 범죄로 세상을 경악케 했습니다.
지난해 국회는 이같은 디지털 성범죄를 막기 위해 일명 'n번방 방지법'을 마련했습니다.
인터넷 사업자에 대한 불법 촬영물 유통 방지 의무도 부과됐는데, 지난주 금요일부터 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됐습니다.
네이버와 카카오 등 포털 사업자뿐 아니라 대형 인터넷 커뮤니티 운영자들은 불법 촬영물 여부를 사전에 확인해 차단해야 합니다.
그런데 법 시행 이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검열 논란이 빚어졌습니다.
고양이 동영상처럼 지극히 일상적인 모습이 담긴 영상까지 차단됐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논란은 일파만파 확산됐고, 일부 커뮤니티에선 다수의 누리꾼들이 동영상 등을 올리며 자칭 '검열 테스트'에 나서는 일까지 빚어졌습니다.
이에 대해 방송통신위원회는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
불법 촬영물에 해당하는지 그 여부를 기계적으로 필터링할 뿐이며 고양이 등 일반 영상이 차단된 적도 없다는 겁니다.
법안에 대한 본질 흐리기일 뿐이란 비판도 제기됐습니다.
<서승희 /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 "검열이다, 사생활 침해다, 자유권의 침해다 이런 방식의 딱지를 붙여 가면서 법안의 본래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본질을 흐리는 논의들이…"
<김호진 / 디지털 장의사> "그것만 해서 되겠어? 거기에 올리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라고 얘기를 해요…(법을) 하나 만들어서 좋은 상황들과 나쁜 상황들을 캐치를 해서 다른 것까지 만들어나가면…"
그럼에도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불법성 여부를 떠나 개인의 콘텐츠가 법적 필터링을 거쳐야한다는 것 자체에 위화감을 느끼는 이들이 적지 않은데다, 그 대상이 계속 확대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정보의 독점으로 사회 구석구석을 통제하는 이른바 '빅브라더' 논쟁을 다시 한 번 촉발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습니다.
연합뉴스TV 김예림입니다.
[이광빈 기자]
앞서 보셨듯이, 이제 막 시행된 'n번방 방지법'을 놓고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다는 주장과 불법 촬영물 유통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는 반론이 충돌하고 있는데요. 이 필터링 기술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리고 정부의 주장대로 전혀 문제가 없는 건지 이어서 김민혜 기자가 살펴봤습니다.
['필터링 기술' 영상은 안본다지만…실효성 논란 여전 / 김민혜 기자]
카카오톡에 불특정 다수가 참여할 수 있는 공개채팅방을 만들어봤습니다.
그리고 나서 약 1분 짜리 동영상을 채팅방에 올렸더니 불법촬영물인지 검토중이라는 문구가 뜨고, 약 7초 뒤에 업로드됩니다.
'n번방 방지법' 후속 조치에 따라 지난 10일부터 해당 영상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불법영상물 등으로 심의·의결한 정보인지를 확인하는 과정인데, 여기에는 '필터링 기술'이 쓰입니다.
이용자가 올린 영상의 디지털 특징정보가, 방심위가 불법동영상이라고 의결한 영상물들의 디지털 특징정보와 일치하거나 유사한지 비교해 보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방심위가 가지고 있는 영상 하나가 '010101'이란 값으로 매겨져 있고, 그 값이 똑같은지를 보는 것으로 영상의 내용이나 의미를 읽는 개념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방심위 관계자(음성변조)> "어떤 모양을 인식하는게 아니고 그 부위가 노출된 장면의 그래픽과 오디오 값을 추출을 합니다. 이것을 특징값으로 만들어 그걸 제공하는…"
현재 방심위에 축적돼 있는 불법촬영물과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은 7천5백여개, 이 역시 사업자에게도 영상이 아닌 디지털 특징정보로 제공됩니다.
또 이는 오픈채팅방 등 공개 서비스에 대해서만 적용되기 때문에 개인 채팅방까지 검열한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정작 'n번방 방지법'의 발단이 된 텔레그램의 경우 사적 대화방이어서 이번 조치에선 빠졌습니다. 또 이번 조치가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에 대한 논란도 여전합니다.
<권세화 /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정책실장> "디지털 성범죄물 특성상 공개된 서비스에서 유통되는 경우가 극히 드문데 기업들이 당연히 위기의식을 가지고 대응하는 공개된 서비스에다가 필터링 기술을 하는 거 자체가 실효성도 없거니와 시스템에 엄청난 과부하가 걸릴 수밖에…"
기존 불법촬영물 등의 재유통을 막자는 취지에선 필요한 조치로도 볼 수 있지만, 체계상 방심위 데이터베이스에 올라와 있지 않은 새로운 불법촬영물 등은 당장 걸러내기 어렵다는 한계도 분명합니다.
또 자신이 올린 동영상이 필터링을 거친다는 절차만으로도 이용자들이 검열을 받는 느낌을 줄 수 있는 만큼 6개월의 계도기간동안 불편과 혼란이 없도록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안내할 책임이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연합뉴스TV 김민혜입니다.
[코너:이광빈 기자]
이처럼, n번방 방지법에 따라 불법영상물을 걸러내는 것은 영상 필터링 기술입니다.
n번방 방지법 때문에 최근 주목받았지만, 돌이켜보면 이미 10여년 전에 주목받았던 기술입니다. 웹하드에서 유통되는 불법 복제 및 유해 영상물을 걸러내거나, 영상 검색을 위해 개발된 기술인데요. 기술 별로 세부적인 방식은 다르지만 원본 영상물의 특징을 추출한 뒤 이 특징과 같은 영상물이 올라오면 차단하는 식입니다.
2009년께 관련 기술이 고급화돼 각광받기 시작했는데요. 당시 제가 직접 관련 기술을 취재하고, 불법 복제 영화를 차단하는 시연을 보기도 했습니다. 영상 필터링 기술에 인공지능, AI가 사용돼 AI가 인터넷에서 이용자의 영상을 먼저 들여다본다는 우려도 나왔는데요. 전문가들은 AI와는 거리가 있는 기술이라는 평가를 내놓습니다.
불법 촬영물과 상관 없는 고양이 등장 영상이 차단됐다는 주장이 맞다고 하더라도, 기술 문제라기보다는, 원본 영상 데이터베이스와 관련된 문제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기술적인 논란에 대해 살펴보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는데요. 필터링의 주체와 관련된 논란이 남습니다. 필터링의 주체가 국가가 아니라 민간 사업자가 되도록 부추긴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습니다. 인터넷 사업자가 불법 촬영물의 유통을 방지하도록 의무를 안게 되는 것은 사실상 개인의 자유를 직접 침해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민간에 의한 검열이 강화될 수 있다는 우려입니다. 독일에서도 인터넷 상에서 '민간에 의한 검열' 문제가 제기된 바 있는데요. 독일은 2017년 10월부터 인터넷 상에서 혐오와 증오 표현을 차단하도록 하는 법을 시행했는데요. 당시 제가 베를린 현지에서 특파원으로 취재를 했는데, 입법을 위한 오랜 사회적 논의 과정에서 혐오와 증오 콘텐츠에 대한 판단을 사법부가 아닌 민간 인터넷 기업이 한다는 점이 논란이 됐습니다.
포털과 SNS 등 IT 기업이 점점 공룡화되고 '빅 브라더화' 되어 간다는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이런 문제는 사회적으로 계속 논의해야 할 과제로 보입니다.
[이광빈 기자]
방지법을 둘러싼 찬반논쟁은 정치권에서도 가열되고 있습니다. 대선을 앞두고 국민의힘은 검열 우려를 들어 재개정 추진 방침을 밝힌 반면 민주당은 앞서 여야가 합의한 법이라고 맞서고 있습니다. 찬반 공방에 가려 진지한 법 보완 논의가 실종됐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김수강 기자입니다.
['n번방 방지법' 대선쟁점 불똥…보완 논의 실종? / 김수강 기자]
n번방 방지법이 시행된 지난 10일,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법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내며 '재개정 추진' 입장을 밝혔습니다.
n번방 방지법이 헌법이 보장하는 통신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고, 해외 서비스인 텔레그램엔 정작 적용이 어려워 실효성도 떨어진다는 겁니다.
<이준석 / 국민의힘 대표(지난 13일)> "커뮤니티 사이트에 게시하는 게시물을 모니터링하고 제한하는 것은 헌법 제21조가 보장하는 언론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할 소지가 있고…"
윤석열 후보도 이같은 방침에 동의하며 힘을 실었습니다. 윤 후보는 n번방 방지법이 제2의 범죄를 막기에는 역부족인 반면 절대다수 시민에게 검열의 공포를 안겨 준다고 주장했습니다.
앞서 이 법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힌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각을 세운 셈입니다. 이 후보는 자유와 권리엔 한계가 있다며, 앞서 여야 합의로 국회를 통과한 법임을 강조했습니다.
<이재명 /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지난 11일)> "n번방, 음란물 문제도 누리는 자유에 비해서 다른 사람 피해를 입는거니까, 사회 질서에 반하는 거면 하면 안되죠."
정의당 심상정 후보 역시 가세해 윤 후보가 법 재개정 이유로 '고양이 영상'을 든 것을 저격했습니다.
<심상정 / 정의당 대선 후보(지난 13일)> "이번에는 고양이를 앞세우고 있습니다. 국민의힘이 검열이라고 지적하는 부분은 각 포털이 필터링 알고리즘을 보완하면 될 일입니다."
n번방 금지법은 대선 후보간 찬반 공방으로 번지는 모양새입니다.
특히 2030 남녀가 이 법에 대해 입장차를 보이고 있는 만큼 지지층 공략을 위한 정치권의 향후 공방은 더욱 거세질 수 있습니다.
다만 대선을 앞두고 정치 공방만 가열되다 보니 법 보완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아쉬움이 나옵니다.
<조은호 / 민변 여성인권위원회 변호사 (n번방 피해자 공동대리인)> "특정 사건의 이름을 붙였다는 것부터 문제라고 생각을 합니다. 사건이 회자되면서 피해자들이 사건을 잊기 어렵고, 2차 피해에 대해서 정치권에서 너무 배려없이 논쟁을 이어가고… 법령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나 사실관계, 실제 피해자 지원 실무에 대한 파악 없이 갈등을 조장하는 것은 지양해 주셨으면 합니다."
20대 국회 당시 졸속 처리라는 지적과 함께 통과된 N번방 방지법, 내년 6월 계도기간까지 보다 실효성 있는 방향으로 보완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됩니다.
연합뉴스 TV 김수강입니다.
[클로징: 이광빈 기자]
정치권으로 번진 법개정 논란에 여론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범죄 예방을 위해 필요한 법"이다. 그래서 개정을 반대한다는 응답이 56.3%. 인권침해 등의 우려가 있다. 그래서 개정해야 한다는 찬성 응답이 35.1%로 조사됐습니다.
대만에서도 우리와 비슷한 n번방 사건이 있었습니다. 린허쥔. 26살로 대만 국립대 의대 석사과정에 입학 예정이었던 청년입니다. 이 사건의 피해자는 무려 미성년자 여든한명에 달했고 여덜살 어린이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린허쥔은 타인의 신분을 도용해 여성인 척하거나 또래 행세를 하며 친분을 쌓으며 나체사진을 요구했습니다. 나체사진을 보낸 피해자를 상대로 공개하겠다는 협박을 가해 추가로 노출 사진을 요구했고, 그렇게 전송받은 사진을 네티즌들과 공유했습니다. N번방 사건과 정말 판박입니다.
대만 법원의 판단은 어땠을까요? 1심 징역 3년 4개월. 그러나 고등법원은 원심 형량이 너무 가볍다고 보고 피해자 1명당 12~16개월의 형을 적용해 무려 징역 106년 10개월을 선고했습니다. 사실상 무기징역인데요.
다시 한국의 2년여 전으로 돌아가보겠습니다. 가해자의 얼굴이 공개된 채, 포토라인에 서던 이 순간. 많은 시민이 공분했습니다.
지금까지 20여명의 가해자들이 처벌됐지만, 재판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습니다. 텔레그램 성착취물 제작?유포방 관련 피해자는 무려 880명에 달합니다. 당시 일부 피해자는 극도의 수치심 속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지금 n번방 방지법이 만들어져 시행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2년 전으로 돌아가 법이 만들어진 진짜 이유를 되짚어봐야겠습니다.
연합뉴스TV 기사문의 및 제보 : 카톡/라인 jebo23
(끝)
[탐사보도 뉴스프리즘] 과잉 규제 VS 필수 법률 'n번방 방지법' 사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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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보도 뉴스프리즘] 과잉 규제 VS 필수 법률 'n번방 방지법' 사실은?2021-12-25 22: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