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무슨, 암기나 해'…그래놓고 학생 문해력 탓하는 사회 [탐사보도 뉴스프리즘]
[오프닝 : 이광빈 기자]
시민의 눈높이에서 질문하고, 한국 사회에 화두를 던지며,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 가는 <뉴스프리즘> 시작합니다! 이번 주 <뉴스프리즘>이 주목한 이슈, 함께 보시죠.
[영상구성]
[오프닝 : 이광빈 기자]
한글날을 앞두고 문해력 논란이 크게 일었습니다.
젊은층을 중심으로 '심심한 사과'라는 표현을 이해하지 못하는 점이 문제시 되면서 문해력 논란이 촉발됐는데요. 신조어와 줄임말 사용이 확산하면서, 한글 파괴에 대한 우려가 끊이지 않습니다.
먼저 구하림 기자가 실태를 살펴봤습니다.
["사과가 '심심하다'고요?"…후퇴하는 문해력 / 구하림 기자]
지난 8월 한 온라인 카페에 올라온 안내문입니다.
예약 과정에 불편을 끼쳐 심심한 사과 말씀을 드린다는 내용인데, 이 '심심하다'는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한 덧글이 달려있습니다.
포털사이트에 '심심한 사과'를 검색해봤습니다.
"사과가 심심하다는 게 무슨 뜻인가요", "사과를 하려면 정중하게 해야 하지 않느냐"는 게시글도 눈에 띕니다.
젊은 세대가 기존에 두루 사용되는 단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례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오늘을 뜻하는 '금일'을 금요일로 이해하거나, 3일을 뜻하는 '사흘'을 4일로, '융통성이 부족하다'는 뜻의 '고지식하다'는 지식 수준이 높다는 것인 줄 알았다는 사연도 있습니다.
"이처럼 국어에 대한 이해도는 점점 떨어지는 양상이지만, 각종 줄임말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습니다.
'얼죽아 (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유행어는 물론이고, 단박에 이해하기 어려운 줄임말이 10대 사이에서 통용되는 것입니다."
각종 SNS와 유튜브 등 영상매체 사용량은 대폭 늘고 독서량은 급격히 줄어든 탓에, 청소년들 사이에서 기존에 사용되던 단어는 사장되고 대신 신조어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됐습니다.
<김세중 / 언어학자·전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영상에서 사용되는 언어의 양 자체가 매우, 책에서 사용되는 텍스트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양도 적고, 어휘도 극히 한정돼있고…"
신조어를 통해 또래 사이 소통이 보다 풍부해진다면 창의적 조어 활동으로 볼 수도 있지만, 널리 통용되는 단어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것은 심각한 문제로 지적됩니다.
평균 어휘력이 지속적으로 퇴보한다면, 장기적으로는 국가적 위기가 될 수 있다는 진단도 나옵니다.
<김세중 / 언어학자·전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글을 읽어도 짧은 글만 읽기를 좋아하지 긴 글을 읽기를 꺼려하고… 국민들의 전반적 문해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나라 전체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소이거든요."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 발달과는 정반대로 문해력은 오히려 후퇴 위기에 처한 상황… 결코 가볍게 여길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습니다.
연합뉴스TV 구하림입니다.
[이광빈 기자]
문해력이 떨어지는 현상은 기초학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특히 일선 학교 현장의 고민이 큰데요
소재형 기자가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봤습니다.
['문해력' 저하 논란…교육 현장 '위기감' / 소재형 기자]
"최근 학생들의 문해력을 두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직접 알아보기 위해 한 초등학교에 나와있는데요. 교실로 들어가서 테스트를 한 번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최근 논란이 됐던 심심한 사과부터 사흘까지, 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에게 다섯 가지 단어를 물어봤습니다.
5개 단어 가운데 가장 적은 수의 학생이 안다고 대답했던 '고지식하다'란 말의 뜻을, 손을 든 학생에게 물어봤습니다.
"지식이 높다?"
이번엔 사흘이란 단어의 뜻을 물어봤더니 절반이 안다고 응답했습니다.
"(이거 뜻?) 4일?"
단어의 뜻을 아는 학생 자체가 적었고, 스스로 뜻을 안다고 생각하는 학생도 어감으로 유추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민주은 / 보라매초등학교 6학년> "어렵다기보다는 조금 헷갈린게 많았던거 같아요. 사흘이 있는데 그게 3일인지, 4일인지 그게 좀 많이 헷갈렸어요."
<김태훈 / 보라매초등학교 6학년> "다섯 문제가 있었는데 네 문제 빼고 한 개만 딱 알았어요."
일선에 있는 교사들도 최근 학생들의 문해력이 점차 떨어지고 있는 실태를 체감하고 있었습니다.
<성신일 / 보라매초등학교 교사> "아주 쉬운 단어들이라도 "선생님 이거 이해 안 돼요", "선생님 이게 뭐에요" 라고 물어보는 경우가 훨씬 더 많아졌고…"
실제 한국교육개발원의 조사 결과 국어 과목에서 67%, 수학 과목에서 60%의 교사들이 어린 학생들에게 단어를 가르치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응답했습니다.
<조성철 / 한국교총 대변인> "문해력이 저하되다보니까 기초학력 저하와도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하루 빨리 문해력을 높이는 교육활동들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
교육부도 대책 마련에 나섰습니다.
교육부는 초등학교 저학년의 국어 수업시간을 종전보다 연간 34시간 더 늘리고, 고등학교에선 매체 의사소통, 문학과 영상 등 과목들을 새로 만들어 미디어 문해력을 높일 계획입니다.
심심한 사과로 촉발된 문해력 논란. 교육부가 마련한 이같은 대책들이 학생들의 문해력을 높이는데 효과를 낼 수 있을 지 주목됩니다.
연합뉴스TV 소재형입니다.
[코너 : 이광빈 기자]
광고가 언어 습관에 미치는 영향은 큽니다. 광고에서 많은 유행어가 만들어졌습니다. 광고를 통해 사회에 잘못된 언어 습관이 형성될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광고에 사용되는 언어에 대해 사려가 깊어야 하는데요.
그런데, 최근 광고에서 삐뚤어진 언어 사용 현상이 속속 발견됩니다. 특히 광고가 욕설을 팔고 있습니다.
콩고 출신 방송인 조나단의 이름을 활용한 유통업계의 마케팅에 대해 지적이 잇따랐습니다. 흔히 하는 욕설을 연상케 하는 수법인데요. 호텔스컴바인은 조나단을 광고에 출연시키며 '조나 단순한 호텔 찾기'라고 홍보했습니다.
맥심도 조나단을 활용해 욕설을 연상케 하는 마케팅을 했습니다. 맥심은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조나단 슈프림골드 이벤트'를 진행했는데요. 여러 레시피로 만든 커피 명칭을 조나단의 이름을 따서 지었는데, 비속어를 연상케한다는 지적입니다.
버거 프랜차이즈 '맘스터치'의 마케팅도 도마에 올랐습니다. 인스타그램에 어머니의 프로필 사진을 올리면 스낵볼을 주는 행사를 진행했는데요. 그런데 행사 문구를 '마이애미 프로필 사진전'이라고 사용해 '패륜 마케팅'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애미'란 표현이 문제가 된 것인데요.
BC카드에서 내놓은 새 신용카드 브랜드인 '시발(始發) 카드'를 두고도 문제제기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시발은 '출발'을 의미하는데요. 한국전쟁이 끝난 뒤인 1955년 만들어진 자동차 이름이 '시발'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BC카드가 새로 내놓은 카드 이름은 욕설로 들릴 수 있습니다.
여행숙박 관련 플랫폼 '여기어때' 광고도 문제가 됐습니다. 다양한 인물들이 '숙박의 달인' 존에게 숙소 잡는 법을 묻는데, 이 과정에서 이런 대화들이 오갑니다.
한 번 들어보시죠.
존의 이름에 1인칭 대명사인 '나'를 붙인 것인데요.
편의점 GS25의 자체상표 에너지음료인 '존버나이트'도 논란에 휩싸인 바 있습니다. '존버'가 젊은 층에서 흔한 은어라고 하지만, 본디 비속어인 만큼, 청소년들의 언어습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욕설, 비속어 연상 마케팅을 재치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요. 상업 광고에서 공익성을 우선하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최소한의 사회적 책임이 깔려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젊은층의 이른바 문해력 논란은 단순히 교육의 문제가 아닌 사회 구조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급격한 사회 변화와 함께 한국어도 빠르게 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세대간 소통을 늘려야한다는 지적입니다.
박지운 기자입니다.
["언어 세대교체"…소통단절·세대갈등 핵심 / 박지운 기자]
문해력 논란을 촉발했던 '심심한 사과'라는 말을 들었을 때, 고령층과 젊은층은 서로 다른 언어를 떠올립니다.
<김금자 / 서울 송파구> "심심한 사과 하면 한자가 먼저 떠오르고 굉장히 마음속 깊은 데서 우러나서 정중한 사과를 드립니다 그런 뜻으로 이해하고…"
<문정호 / 서울 관악구> "단어를 들었을 때 한자가 바로 떠오른다기 보다는 저 같은 경우는 한글이나…영어가 더 쉽게 떠오를 수도 있고."
달라도 너무 다른 세대별 문해력.
이번 논란은 젊은층의 문해력과 실질 문맹률을 지적하는 문제로까지 불거졌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번 논란을 단순히 문해력 차원에서 접근할 게 아니라, 사회 변화에서 비롯된 구조적 현상으로 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회가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두 세대가 서로 다른 언어 체계를 학습하게 됐다는 겁니다."
<이택광 /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최근의 젊은 세대들은 과거의 한자 문화권보다는 영어 문화권에 훨씬 익숙하기 때문에 비록 한국어를 사용하고는 있지만 한국어의 감각이 오히려 영어에 더 가깝게 맞춰져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이건 지적 능력의 문제가 아니고 문화적 변이의 문제죠. 언어적 감각이 바뀐 거예요."
젊은층은 자신들이 학습해온 나름대로의 방식에 따라 '심심한 사과'라는 표현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겁니다.
같은 한국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세대간 '언어 감각'이 다르기 때문에 이번 논란을 일종의 세대 교체 현상으로 해석해야한다는 설명입니다.
다만 세대간 공유되는 '상식'이 사라지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김성태 / 고려대학교 미디어학부 교수> "좋아하는 것만 자꾸 소비하게 되는 편식 현상, 정보 편식 현상이죠. 그게 지식의 편식으로 나타나게 되고. 어떻게 보면 건전한 사회가 유지되는 데 어려움이 생기게 되고요. 우리 사회 내에서 연령대별로 이분화 계층이 나눠진다던지. 이념 전쟁이 있다던지. 이런 것들도 다 거기서 출발하기 때문에…"
실제로 '심심한 사과' 논란은 소통 단절과 세대갈등의 싹이 되기도 했습니다.
단어를 잘못 이해해놓고선 오히려 당사자를 질책하거나, 한자를 모른다며 무식하다고 상대를 타박하는 상황이 반복됐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번 문해력 논란을 한자 교육 부족 등 단순한 교육의 문제로 봐서는 안된다고 말합니다.
한글 언어의 사회적, 구조적 변화에 초점을 맞춰 세대간 소통을 강화해 언어적 소통 부족이 사회 갈등으로 확산하는 것을 막아야한다는 지적입니다.
연합뉴스TV 박지운입니다.
[클로징: 이광빈 기자]
최근 SNS나 인터넷에서 우리나라 실질 문맹률 수치가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OECD에서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우리나라 실질 문맹률은 75%라고 합니다. 읽을 수는 있지만 글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4명 중 1명이라는 것인데, 이 수치는 최근이 아니라, 2001년, 즉 21년 전의 수치입니다. 최근 연구결과 실질 문맹률은 10% 미만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문해력 논란과 관련해 젊은세대, 즉 MZ세대들의 어휘 수준만을 원인으로 지목하는 것은 단견일 수 있습니다.
한문 교육이 줄어드는 대신 디지털 미디어 접촉과 영어 활용이 늘어난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익숙한 젋은 세대들은 정보를 책으로 접하기 보단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등으로 필요한 정보를 골라서 빠르게 보는 데 익숙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기성세대 대화에선 자연스럽게 사용됐던 단어들이 젋은세대의 대화에선 잘 쓰이지 않는 말이 됐기 때문인데요.
'심심한 사과'라는 말은 한자어에 익숙한 기성세대들에게는 교감을 일으키지만, '마음 깊은 사과'라고 했다면 모든 세대에게 의미를 전달했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언어가 시대 흐름에 따라 바뀌는 것이며 변화 자체를 막을 순 없다고 지적합니다.
원론적인 이야기일 수 있지만, 문해력 논쟁에서 해법의 핵심은 독서가 아닐까요? 디지털 사회에 책을 좀 더 가까이 하는 게 젊은세대와 기성세대 간 두터워진 언어 소통의 장벽을 낮추는 길입니다.
이번주 뉴스프리즘은 여기까지입니다. 다음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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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무슨, 암기나 해'…그래놓고 학생 문해력 탓하는 사회 [탐사보도 뉴스프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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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무슨, 암기나 해'…그래놓고 학생 문해력 탓하는 사회 [탐사보도 뉴스프리즘]2022-10-08 22: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