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풍향계] 불신과 대립의 정치가 낳은 '제3지대론'…명멸의 정치사
[앵커]
내년 총선을 앞둔 정치권에서 '변화의 길'을 모색하기 위한 움직임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거대 양당 정치에 실망한 국민 앞에 새로운 정치를 선보이겠다는 건데요.
과연 총선판을 흔들 수 있을지 아직은 미지수입니다.
배경과 향배를, 이번주 여의도 풍향계에서 최지숙 기자가 짚어봤습니다.
[기자]
'보수냐, 진보냐'. 이분법적 선택이 강조돼 온 한국 정치사에서, 선거철이면 자주 등장했던 단골 손님이 있습니다.
바로 '제3지대'입니다.
기성 정치의 틈을 비집고 새로운 정치 공간의 싹을 틔우기 위한 시도인데, 일종의 정치적 중립 지대를 뜻합니다.
총선을 1년도 안 남긴 시점에서 변화를 향한 여망에 힘입어 또 한 번, 이 같은 움직임이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방아쇠를 당긴 건, 최근 여의도에서 열린 한 토론회였습니다.
지난 18일, '다른 미래를 위한 성찰과 모색 포럼'이라는 이름의 토론회가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렸습니다.
거대 양당제의 폐해와 극단의 대립으로 점철된 지금의 정치 현실을 놓고 가감없는 쓴소리가 이어졌습니다.
<김웅 / 국민의힘 의원> "민주당 하면 떠오르는 것은 '개딸'과 돈봉투이고, 우리 당 하면 떠오르는 것이 전광훈 그리고 끝도 없이 나오는 막말 아니겠습니까."
<이상민 / 더불어민주당 의원> "정치인들의 물갈이 차원이 아니고 정당의 물갈이가 필요하다…자정 기능이 멈춰있기 때문에 외부 쇼크를 통해서라도 필요하다…"
특히 참석자들의 면면이 눈길을 끌었는데, 현재 거대 양당과 거리를 둔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과 금태섭 전 의원이 토론회를 주도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금 전 의원은 신당 창당 의지를 내비쳤고,
<금태섭 /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대단히 어려운 길이고… 앞서 나가는 말씀을 드리기보다 저는 그 길을 걷겠다고 말씀드렸고 차차 준비되는대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새로운 정치세력의 필요성도 제기됐습니다.
<김종인 /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에 하나도 해결된 것이 없어요. 정치가 해결하지 못하면 절대 해결을 못해요."
'제3지대론'은 대체로 기성 정치에 대한 불신과 혐오 속에 등판하곤 했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급속히 확대된 무당층이 그 배경이 됐습니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 정당이 없음'을 선택하는 무당층은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여야의 기득권 정치와 팬덤 정치 모두 호감을 얻지 못하고 있는데, 정치 현실의 난맥상이 자초한 결과라는 분석이 대체적입니다.
여권은 근로시간 개편을 비롯한 정책 혼선과 인사 논란, 국민의힘 지도부 설화 등 악재에 둘러싸였습니다.
감시와 견제를 받는 것은 집권 세력의 숙명이지만, 얽힌 실타래를 풀어가는 방법 역시 개운치는 않다는 평가입니다.
<김기현 / 국민의힘 대표> "가짜뉴스와 허위사실을 기반으로 하는 선전·선동이 도를 넘고 있습니다.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방해하며…"
여론조사나 가짜뉴스 때리기에 앞서, 여론 앞에 겸손한 모습으로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민주당은 거대 의석을 앞세워 장관 해임건의안부터 쟁점 법안 처리까지, 막무가내식 밀어붙이기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습니다.
여기에 이재명 대표를 둘러싼 사법리스크에 이어 '2021년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의혹'이 불거지며 도덕성에도 타격을 입었습니다.
<이재명 / 더불어민주당 대표> "사안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말씀 드리면서 이번 일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당대표로서 깊이 사과드립니다."
'야당 탄압' 등을 주장하며 검찰에 맞섰지만, 이제 이 같은 공세만으로 상황을 뚫고 가기에는 무리라는 우려도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여당이 싫어 야당을 찍고, 야당이 싫어 여당을 찍고'. 최선이 아닌 차악을 선택하는 악순환의 고리와 거대 양당의 실점 속에, 대안 세력이 헤집고 나올 토양이 쌓여온 겁니다.
하지만 제3지대의 성공 방정식도 그리 간단치는 않습니다.
대선주자급 인물이나, 탄탄한 지역 기반 등이 없다면 화점(花點)을 놓기도 어렵습니다.
정주영의 통일국민당과 김종필의 자유민주연합, 정몽준의 국민통합21, 제3지대를 표방했던 다양한 정당의 명멸은 '인물론'과 무관치 않았습니다.
비교적 최근의 사례로는 안철수 의원을 주축으로 한 '국민의당'이 있었는데요.
역시 대선주자급 인물이 당의 구심점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성공 사례의 표본처럼 여겨지는 자민련은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 모두 50석을 확보했습니다.
여기에는 인물론에 더해, 지역 기반이 뒤따랐습니다.
당시 김종필 총재는 충청도만 홀대 받았다는 이른바 '충청 핫바지론'을 들고 나왔는데, 충청권 표심의 집결로 이어졌습니다.
20대 총선에서 '녹색 돌풍'을 일으키며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한 국민의당은 호남이 지지 기반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제3지대의 수명은 길지 않았습니다.
구심점이 됐던 인물의 은퇴, 또는 합당과 탈당 등을 거치며 결국 블랙홀처럼 거대 양당에 다시 빨려 들어간 탓에 '선거철 이합집산에 불과하다'는 회의론도 제기돼 왔습니다.
제3지대 신드롬의 실패는 양당 체제만 더 공고히 하는 결과를 낳았고, 사회적 분열은 가속화하곤 했습니다.
그럼에도 매번 새로운 중간지대의 등장에 눈길이 쏠리는 건, '지금보다 나은 정치'를 향한 여망 때문입니다.
휩쓸리기는 쉽지만, 홀로서기는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거대 정당으로 건너가기 위한 교두보가 아니라 '더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정치 본연의 목표로 일어선다면, 그 시작은 미약할지라도 깨어있는 국민이 분명 지켜볼 것입니다.
지금까지 여의도 풍향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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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 김선호
AD 허지수
그래픽 방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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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풍향계] 불신과 대립의 정치가 낳은 '제3지대론'…명멸의 정치사2023-04-23 09:5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