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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보도 뉴스프리즘] '아프간 협력자' 한국에 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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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보도 뉴스프리즘] '아프간 협력자' 한국에 오다

2021-09-05 10:01:59


[탐사보도 뉴스프리즘] '아프간 협력자' 한국에 오다

[오프닝: 이준흠 기자]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시민의 눈높이에서 질문하고, 한국 사회에 화두를 던지며,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 가는 <뉴스프리즘> 시작합니다! 이번 주 <뉴스프리즘>이 주목한 이슈, 함께 보시죠.

[영상구성]

[이준흠 기자]

지난달 26일부터 이틀에 걸쳐 아프간 협력자와 가족 390명이 한국 땅을 밟았습니다. '특별공로자'였다가 '특별기여자'로 바뀌는 등 유례없던 일이라 법 개정까지 필요했는데요. 이들이 어떤 자격으로 한국 땅에 머무르게 되는 건지 먼저 홍정원 기자가 짚어봤습니다.

[한국 온 미라클 아프간인들…특별기여자? 난민? / 홍정원 기자]

활주로는 아비규환입니다. 여기는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 공항입니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아프간 난민들에게 탈출은 기적과 같은 일입니다.

한국행 비행기 옆으로도 긴 줄이 늘어섰습니다. 아프간 조력자들을 국내로 들여오는, '미라클 작전'입니다. 이들에게 붙여진 첫 이름은 특별공로자입니다.

<최종문 / 외교부 2차관> "참고로 이들은 난민이 아니라 특별공로자로서 국내에 들어오는 것임을 말씀드립니다."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대한민국 인천. 긴장감은 마침내 안도감으로 바뀝니다. 그 사이 이름은 한 번 더 바뀌었습니다.

<박범계 / 법무부 장관> "특별공로자라는 명칭보다는 특별기여자로 법무부가 오늘 정했습니다."

현행법에 없는 새로운 이름을 꺼내 든 겁니다.

법 개정이 필요합니다.

<박범계 / 법무부 장관> "대한민국에 특별한 기여가 있거나 공익증진에 이바지한 외국인에게 체류자격(F-2)을 줄 수 있도록 시행령을 개정하고 있고…"

비자가 발급되면 5년간 한국에 머물 수 있습니다. 직장도 가질 수 있고, 당연히 돈도 벌 수 있습니다.

<강성국 / 법무부 차관> "일반적인 난민과 달리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 정부를 도운 사람들이기 때문에 난민보다는 더 좋은 지위와 지원을 받아야 한다고…"

설명은 이래도, 결국 인천 부평에 터 잡은 100여 명의 미얀마 난민들과 비슷한 수준의 지원을 받게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사실상 이름만 다를 뿐 난민과 별반 다를 게 없습니다.

<성일광 /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교수> "유럽이나 다른 지역에서도 난민 대신 특별공로자라는 용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우리도 다른 용어를 써서 국내 여론도 우호적으로 바꾸고…"

실제 난민에 대한 국내 여론은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았습니다. 2018년 예멘 난민 논란이 대표적입니다.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찬성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지만.

<현장음> "난민협약 이행하라, 난민협약 이행하라, 난민협약 이행하라!"

반대 측에 균형추가 쏠린 게 사실입니다.

<현장음> "(추방하라!) 추방하라, 추방하라, 추방하라!"

논란 끝에 정부는 500명 가까운 예멘 난민 중 단 2명에 대해서만 난민 지위를 인정했습니다. 비율로는 고작 0.4%.

난민이 아니다, 한국에 기여한 조력자라는 거듭된 정부의 설명은 결국 여론을 의식한 정치적 판단이었다는 해석입니다.

<김진 / 사단법인 두루 변호사> "마치 난민으로 인정을 받고 난민으로 체류하기 위해서는 한국 정부에 뭔가를 기여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인식이…"

일단 여론은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논란의 불씨는 하나 남았습니다.

<김진 / 사단법인 두루 변호사> "난민법이 보장하는 권리들은 조금 어려울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예를 들면 가족 결합 원칙 같은 건 어려울 것 같고요."

난민이지만 난민은 아닌 특별기여자들이 아프간에 남겨둔 가족들을 데려오겠다며 난민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할 경우, 또 한 번 이들을 놓고 난민이냐 아니냐의 뜨거운 논쟁이 예상됩니다.

연합뉴스TV 홍정원입니다.

[코너:이준흠 기자]

2001년 '아프간 전쟁'에 우리나라도 비전투부대를 파병하면서 아프간은 한국 외교사에 본격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2007년 샘물교회 선교단 피랍사건, 기억하실 겁니다. 정부 경고를 무시하고 23명이 선교하러 갔다가 탈레반에 붙잡혔는데요.

수백억 몸값을 치른 뒤에야 이들은 고국 땅을 밟을 수 있었는데, 이 때문에 허가 없이 여행금지국가에 가면 징역까지 살 수 있게 법이 바뀌기도 했습니다.

이 아프간의 정식 명칭은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이었습니다.

탈레반이 장악한 이후에는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으로 바뀌었습니다.

부족의 수장이나 실력자가 지배하는 국가가 된 것입니다.

탈레반은 '학생'이라는 뜻인데요. 이슬람 성직자 무함마드 오마르가 학생 50명을 데리고 조직한 민병대가 시초입니다.

아프간 최대 민족, 파슈툰족의 민족주의를 앞세워 2001년까지 아프간을 지배했지만, 엄격한 이슬람 율법 정치로 비난받았는데요.

결국 9·11테러의 배후자 오사마 빈라덴에 대한 신병 인도 요구를 거부하다 아프간 전쟁으로 붕괴했습니다.

친서방 민주정부를 세우고, 군경을 훈련시켜 탈레반 잔당을 소탕할 때만 해도 미국은 이 전쟁이 20년 동안 이어질 줄은 몰랐을 겁니다. 어찌나 길게 느껴졌는지 '영원한 전쟁'이라는 별칭까지 얻었습니다.

끈질기게 버티며 세력을 키워온 탈레반, 끝내 8월 15일 대통령궁을 장악하며 승리를 선언했고, 미국은 8월 30일 밤 11시 59분, 철수 시한 1분을 남기고 마지막 수송기를 띄웠습니다.

현재 아프간에서는 탈레반 정권에서 살 수 없다며 탈출 행렬이 잇따르고 있는데, 특히 여성들의 불안이 큽니다.

탈레반이 샤리아법이라는 이슬람 율법을 따를 것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1970년대 카불 시내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복장이 세계 어느 도시인과 별반 다르지 않죠? 하지만 샤리아법에 따르면 여성들은 온몸을 뒤덮는 부르카를 입어야 하고, 학교를 갈 수 없고, 남성 가족 없이는 밖에 다니지도 못합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미군이 떠나며 생긴 힘의 공백 속, 내전은 물론 무장세력 간 세력 다툼까지 불붙고 있습니다.

탈레반과 반탈레반 저항 세력의 전투가 시작됐고요,

알카에다 같은 테러 조직도 다시 모여들고 있습니다.

카불 공항 등 현지 곳곳에서 발생하는 테러, IS-K의 소행으로 알려지고 있는데요.

극단주의 무장단체 IS의 아프간 지부 격인 곳으로 미국과 평화협정을 맺은 탈레반을 비판하며 경쟁에 나선 겁니다.

경제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는 가운데, 아프간 국민들은 생명의 위협까지 받고 있습니다.

혼란이 이어지자, 미군 철군 과정에서 드러난 정보 실패와 대응 미숙에 대한 비판 여론이 커지며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후 최대 위기를 맞았는데요.

[이준흠 기자]

이런 국제 정세가 우리에게도 미칠 수밖에 없겠죠. 특히 난민 문제를 포함한 외교·안보 정책은 어떻게 펼 것인가가 현재 대선 국면에서도 주요 의제로 떠올랐는데요. 이 내용은 장윤희 기자가 알아봤습니다.

[대선 정국에 등장한 난민 문제…여야 대선주자 신중모드 / 장윤희 기자]

우리나라에서 약 5,000km 떨어진 아프가니스탄. 비행시간만 20시간 넘게 걸리지만, 정치·외교적으로는 더 이상 먼 나라가 아닙니다.

대선 정국에 등장한 아프가니스탄 사태로 정치권은 외교·안보 상황을 더욱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난민 문제도 현안 중 하나입니다.

여야 대선 경선 레이스가 한창입니다. 대선주자들은 잇따라 현안 입장을 밝히며 공약을 내놓고 있지만, 난민 문제에 대해서는 원론적인 태도를 보이며 구체적 입장을 삼가고 있습니다.

대선주자들의 신중한 태도에는 난민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점 그리고 해외 사례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입니다.

2015년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시리아 난민을 적극 수용하려는 과정에서 보수진영이 결집해 정권 교체의 원인이 됐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현재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도 취임 초보다 더욱 보수적인 난민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우리 정부는 아프간 현지 협력자들을 난민이 아닌 특별기여자 신분으로 이송했고, 더불어민주당은 환영 입장을 냈습니다.

이후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들은 국제 연대를 강조하는 원론적 입장을 내고 있습니다. 이재명 후보는 "문 대통령의 뜻을 존중한다"고, 이낙연 후보는 "아프간인을 수용한 진천에 감사하다"고 밝혔습니다.

야권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국민의힘은 아프간인을 받아들인 진천에 감사 인사를 전하면서 이후의 정부 대응, 국민 여론을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국민의힘 대선주자들도 난민 관련 입장을 아끼거나 또는 인권 보호 등 원칙론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윤석열 / 전 검찰총장 (지난달 27일)> "국제법이라든가 인권, 난민 보호에 관한 국제원칙에 입각해서 처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대선주자 중에서는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난민 문제에 가장 선명한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심상정 / 정의당 의원 (지난달 25일)> "아프간 아동과 임산부에 대한 구호 조치에도 우리 정부가 적극 나서줄 것을 제안합니다."

다음 달 각 정당들이 예정대로 대선후보를 최종 선출하면 아프간 사태를 계기로 부각된 외교·안보관, 난민 입장에 대한 검증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연합뉴스TV 장윤희입니다.

[이준흠 기자]

이슬람 문화, 종교, 삶의 방식, 여전히 낯섭니다. 우리 정서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있을 것이고, 테러와 전쟁으로만 이들의 뉴스를 접하다 보니 어느 정도 편견이 있는 것도 사실일 것입니다. 국제화로 이슬람 문화와 접점이 앞으로 더 넓어질 수밖에 없을 텐데요. 이 간극을 어떻게 해소해나갈지, 나경렬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익숙하면서 낯선 이름 이슬람…공존 위해 필요한 건? / 나경렬 기자]

서울 이태원에 있는 할랄푸드 음식점입니다.

직원들이 주문 들어온 배달 음식을 바쁘게 준비합니다.

이곳에 있는 식재료는 모두 할랄 인증을 받았습니다.

할랄은 아랍어로 '허용된 것'이란 뜻으로, 이슬람교도인 무슬림이 먹고 쓸 수 있는 제품을 말합니다.

내국인들도 많이 찾는데, 쉽게 접할 수 있는 이국적인 음식인데다 잘 관리된 식재료가 사용된다는 인식 때문입니다.

<전현덕 / 할랄푸드 식당 직원> "한국 사람도 굉장히 많고요. 회사 다니시는 분들이 점심시간이 되면 많이 찾거나 배달도 많이 시키세요. 할랄 인증을 받는 게 까다롭다고 알고 있고, 정해진 기간마다 갱신을 해야 한다고…"

우리 기업들도 '할랄 시장' 진출에 나섰습니다.

할랄 인증을 받은 간편식이 나오는가 하면, 할랄 제품을 이슬람권에 수출하는 기업들도 늘고 있습니다.

국내 무슬림 인구는 지난 5월 기준 25만 명으로 2008년 대비 2배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할랄 문화가 확산하고 있지만, 거부감이 여전한 게 현실입니다.

한국으로 들어온 아프간인들을 받지 말라는 국민청원이 올라왔는데, 무슬림들과는 종교 문제로 어울려 살 수 없고, 테러도 걱정된다는 게 청원 내용의 핵심입니다.

이런 우려 속에 정부는 '특별 기여자'로 입국한 아프간 사람들에게 장기 체류할 수 있는 자격을 주고, 취업까지 허용하기로 했습니다.

300여 명의 무슬림이 우리 사회의 일원이 되는 건데,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이들과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지 고민해봐야 하는 상황인 겁니다.

공존은 인식의 전환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가 모든 무슬림을 잠재적 범죄자로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합니다.

2018년 예멘인들이 제주도로 들어올 때도 이들이 테러와 범죄를 일삼을 것이란 우려가 있었지만, 이는 현실이 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독일은 이런 인식의 전환을 바탕으로 시리아 난민 70만 명을 받고 독일의 문화와 언어를 교육했습니다. 이를 통해 국익을 극대화하고 있는데, 우리나라가 참고할 만한 사례입니다.

<이희수 / 성공회대 이슬람문화연구소장> "우리가 하지 못하는 산업현장에 투입해 생산성에 기여하게 하고, 그 사람들은 열심히 돈을 모아 조국이 안정됐을 때 돌아가서…우리가 그 나라로 진출할 때 우리 문화를 잘 알고 우리 말을 잘하는 교량 역할로 서로가 윈윈…"

이슬람 문화권에서 건너온, 익숙하면서도 낯선 390명의 손님들은 우리 사회에 '공존'이란 화두를 던지고 그 논쟁의 결과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연합뉴스TV 나경렬입니다.

[클로징: 이준흠 기자]

영화 <파르바나: 아프가니스탄의 눈물>은 1996년부터 2001년까지 탈레반 1차 집권기가 배경입니다. 카불에 사는 소녀 파르바나는 탈레반의 압제 속, 가족 부양을 위해 머리를 깎고 소년 행세를 합니다. 자신처럼 남장을 한 친구와 20년 후에 바닷가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합니다. 20년 후라고 정한 건, 그때쯤이면 탈레반이 물러 갔으리라 기대해서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가혹하게도 영화 속 시간에서 딱 20년이 지난 지금, 다시 탈레반이 아프간 정권을 거머쥐었습니다. 파르바나 같은 민초들의 삶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국제 정세가 급변하는 지금, 우리는 이 나라에 대해 좀 더 아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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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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