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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보도 뉴스프리즘] '부모의 부모가 되다' 과연 해결책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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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보도 뉴스프리즘] '부모의 부모가 되다' 과연 해결책 없나?

2021-12-12 10:05:30


[탐사보도 뉴스프리즘] '부모의 부모가 되다' 과연 해결책 없나?  

[오프닝: 이광빈 기자]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시민의 눈높이에서 질문하고, 한국 사회에 화두를 던지며,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 가는 <뉴스프리즘> 시작합니다! 이번 주 <뉴스프리즘>이 주목한 이슈, 함께 보시죠.

[영상구성]

[이광빈 기자]

홀로 간병을 하다 결국 아버지를 굶겨 숨지게 한 22살 청년, 강도영씨. 강씨 사건은 우리 사회에 큰 숙제를 던져줬습니다. 청년돌봄자, 이른바 '영 케어러'들은 남들에게 뒤처지는 것 같다는 두려움 속에서도 아픈 가족을 먼저 살피고 있었습니다. 조한대 기자입니다.

["뒤처지는 거 같아 두려워"…가장이 된 청년들 / 조한대 기자]

존속살해 혐의로 기소돼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징역 4년형을 선고 받은 22살 강도영씨(가명)

강씨는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버지를 굶겨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하지만 도시가스와 휴대전화가 끊기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유통기한이 임박한 편의점 도시락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딱한 사연도 함께 드러났습니다.

재판부는 "피해자를 사망하도록 놔둬야겠다고 결심한 이후로도 피해자가 배고픔이나 목마름을 호소하면 물과 영양식을 호스에 주입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강씨가 포기와 연민의 심정이 공존하는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청년돌봄자, '영 케어러'가 겪는 현실이 우리 사회의 문제로 대두됐습니다.

36살 전형민씨는 5년전 아버지가 공사장에서 떨어져 머리를 다치는 사고 이후 풀타임 직장을 그만둬야 했습니다.

병 간호 때문에 그 동안 비상근직을 전전하다가, 두 달전 목수 일을 시작했지만 걱정이 적지 않습니다.

<전형민 / 청년돌봄자> "임신·출산·육아, 생애 주기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그런데 사실 당연한 게 아닐 수 있지만, 그런 것도 포기하고 싶진 않은데 포기라기 보단 계획을 세우기가 어려운 거죠."

19살 이채림양은 올 3월 어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지면서 제과제빵사의 꿈을 나중으로 미뤘습니다.

한 달에 200만원이 넘는 병원비를 가족이 모아둔 돈과 청각 장애를 가진 아버지의 월급으로 내기도 빠듯해, 학원비까지 마련할 여력이 없어섭니다.

<이채림 / 청년돌봄자> "준비를 하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다른 주변 친구들은 대학도 가고 취업도 하는데, 저는 뒤처지는 것 같아서 좀 그게 힘들더라고요. 내가 언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지 미래도 막막하고…"

자신보다 가족을 먼저 돌보고 있는 이들은 정부의 지원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연합뉴스TV 조한대입니다.

[이광빈 기자]

강도영씨 사건을 계기로 '간병살인'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현실은 어떨까요? 청년돌봄자들에 대한 제대로 된 통계도 없고, 복지 서비스의 신청주의 원칙으로 사각지대에 놓인 청년들이 많았습니다. 허술한 사회안전망을 둘러싼 구조적 문제를 김장현 기자가 짚어봤습니다.

[신청주의 한계 속 허술한 안전망…국가는 책임없나? / 김장현 기자]

간병살인의 비극으로 내몰린 22살 강도영씨

강씨와 같은 영케어러가 도움의 손길을 받을 수 있는 곳은 마땅치 않은 게 현실입니다.

일단 현행 노인장기요양제도가 대안으로 떠오르지만 이 역시 당사자가 신청해야만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모순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아무리 소득이 적더라도 서류상 수급자 문턱을 넘지 못하면 지원 대상에서 배제되고, 사소한 규정 위반에도 부정 수급자라고 낙인찍는 신청주의 방식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석재은 /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청년들이 사회에서 도움받을 수 있는 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고 그런 부분이 비극을 초래하는 겁니다. (또) 어느 정도 사회의 도움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그 지원이 한계가 있기 때문에 결국 본인들이 굉장히 많은 부분을 감당해야 합니다."

복지전담 공무원이나 사회복지사 등이 발로 뛰어 사각지대를 찾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강씨와 같은 영케어러의 비극은 되풀이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울러 간병살인이 한해 얼마나 발생하는지 통계조차 없는 현실은 문제를 더 키우고 있습니다.

실태 파악이 안되다 보니 이런 문제를 해결할 정책도 없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이제서야 실태 파악 필요성을 느끼고 조사에 나선다고 한 상황입니다.

<이수완 / 보건복지부 청년정책팀장> "전반적인 영케어러 현황에 대해 통계를 구축하고 실태조사를 내년에 착수하겠습니다. 조사를 바탕으로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지원 방안을 검토하겠습니다."

아픈 가족의 돌봄 문제를 떠받치던 사회적 안전망이 가난과 가족 공동체 해체로 무너지고 있는 게 간병살인의 주원인이라는 분석입니다.

간병 문제는 개인이 아닌 국가와 사회가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윤영호 /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경제적, 사회적 문제가 결국 저소득층 가족에게 부과되는 현상이기 때문에 간병 공동체를 해결하는 사회적 자본을 만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가지고 있는 유산 일부를 죽기 전에 기부해 공동 부양을 위해 활용해야 합니다."

간병문제는 더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질병의 고통과 경제적 부담 때문에 죽음의 존엄성을 잃게 되는 일이 없도록 튼튼한 사회적 안전망 구축이 시급한 시점입니다.

연합뉴스TV 김장현입니다.

[코너:이광빈 기자]

복지 전문가들은 강도영씨 부자가 받을 수 있었던 관련 복지로는 노인장기요양보험 서비스 외에도 긴급복지지원제도, 재난적 의료비, 장애인 연금 등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앞서 리포트에서 보셨듯이 이런 제도를 이용하지 못한 것은 '신청하지 않아서'입니다. 하루 밥벌이가 힘겨운 사람에게는 신청주의는 하나의 장벽입니다.

지자체가 신청을 못 하는 이들을 그냥 방치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단전·단수 등 위기 신호를 관계기관을 통해 전달받고 있지만, 이미 사달이 난 뒤일 수 있습니다. 강씨 부자 사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청소년.청년 돌봄자에 대한 실태조사 한 번 제대로 실행한 적 없는 우리와 달리 먼저 초고령 사회로 들어선 선진국들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요.

영국에서는 지난 2019년부터 청년 돌봄자를 대상으로, 보조금 지급 등의 지원 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지방정부의 사회복지사들은, 청년 돌봄자들의 신청을 받아, 부모들을 대신 돌봐주기도 합니다. 청년 돌봄자들은 지방정부로부터 학업이나 직무 교육에 대해 조언을 받거나, 일자리를 소개받을 수도 있습니다. 호주에서도 청년 돌봄자들을 대상으로, 학비보조금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지난 4월 중학생 2학년의 6%, 고등학교 2학년의 4%가 가족을 간병하고 있다는 실태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일본 정부는 젊은 돌봄자들에게 가사노동 지원, 간병지원 등의 서비스 체계를 구축하고 온라인 상담 체계도 마련했습니다.

국내에서도 법적 지원을 뒷받침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됐습니다.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말 '청소년복지 지원법' 개정안을 발의했는데요. 젊은 돌봄자들을 가족돌봄청소년으로 명명하고, 이들의 실태를 조사한 뒤 구체적인 지원방안을 마련하도록 하는 내용입니다.

[이광빈 기자]

한순간에 가장의 책임을 떠안아야 하는 젊은이들을 지원하려면 무엇보다 제도개선이 시급합니다. 강씨와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두텁게 보호하는 정책과 실용적인 법이 필요한데, 대선 후보들이 앞다퉈 제도 마련에 나서겠다고 했습니다. 이 내용은 나경렬 기자가 전합니다.

[대선주자 공약경쟁…내년에는 제도개선 이뤄질까? / 나경렬 기자]

'마음이 멈췄다. 왜 정치를 하는지 다시 생각해본다'

병원비가 없어 위독한 아버지를 집에 방치해 죽음에 이르게 한 강씨 사연을 접한 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반응입니다.

이 후보는 강씨와 같은 삶을 살리는 것이 민생 정치이고, 필요하다면 포퓰리즘이라도 기꺼이 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강씨와 비슷한 연령대인 대학생들 앞에 선 이 후보, 사회, 경제적 약자들이 희망을 갖도록 하는 정책을 만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재명 /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지난 7일)> "사회 전체에 희망을 만들어내야 됩니다. 좌절과 절망이 아니고 더 나은 세상이 가능하다고 믿어지는 세상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최소한 인간적인 삶은 보장돼야 됩니다. 굶어죽진 않아야 합니다."

이 후보는 더 나은 의료비 지원 체계를 만들겠다고 했는데, 긴급복지 의료비를 늘리고, 간병비도 포함하겠다는 게 핵심입니다.

예비후보 때부터 간병비 부담을 줄이는 내용의 공약을 냈던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도 국민의 간병 고통을 국가가 방치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요양병원 간병비를 국민건강보험에서 지원해 부담을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줄이고,

가족 간병을 위한 휴가 기간을 보장해서 간병 실직을 없애겠다는 구체적 약속을 했습니다.

'이 비극 앞에 국가는 없었다'고 외친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재난 수준의 병원비 부담을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한 사람이 1년간 내는 병원비가 100만원을 넘지 않도록 하는 정책 구상을 내놓았습니다.

<심상정 / 정의당 대선 후보(지난달 12일)> "우리 미성년 청년 부양자들에게 국가가 곁에 있다는 확실한 신뢰를 드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위기 가정에 대한 기계적 복지 행정이 아니라 따뜻한 돌봄 행정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도 간병에 따른 가족들의 부담을 줄이는 공약을 내놨는데, 공공병원에서부터 '어르신 간병비 제로' 체계를 만들겠단 입장입니다.

이처럼 대선주자들이 경쟁적으로 공약을 내놓고 있지만, 이들의 공약이 현실화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강씨와 같은 처지의 '영케어러'가 얼마나 되는지, 아직 실태파악 조차 돼 있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이와 함께 현행법은 가족을 돌보거나 생계를 책임지는 자녀들에 대한 명시적 규정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법적인 뒷받침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또 있습니다.

바로 막대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느냐입니다.

앞다퉈 공약경쟁에 나선 대선주자들이 이같은 난관을 극복하고 공약을 현실화할지, 공약이 공염불에 그칠지 유권자들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연합뉴스TV 나경렬입니다.

[클로징: 이광빈 기자]

치매를 앓는 80대 아버지와 유일한 가족인 딸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더 파더>. 딸은 아버지를 안전한 요양원에 보내고 자신은 멀리 이사를 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계속 집에 머물기를 원합니다.

간병하는 자녀와 환자인 부모 사이의 갈등은 이처럼 오랜 외면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또 '독박간병'이 길게 지속되면 보호자인 자녀가 '간병 우울증'을 앓을 확률이 높아집니다. 간병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다니던 직장에서 퇴직하는가 하면

극단적인 경우 앞서 소개해드린 것처럼 '살인'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초고령 사회로의 진입을 눈앞에 둔 지금. 이제 우리 이웃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우리 친척의 이야기, 아니 어쩌면 내일, 나의 이야기가 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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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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