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여의도풍향계] 사상 초유 '회동 불발'…신-구 권력간 갈등의 역사

Y-Story명품리포트 맥

[여의도풍향계] 사상 초유 '회동 불발'…신-구 권력간 갈등의 역사

2022-03-20 09:53:33

[여의도풍향계] 사상 초유 '회동 불발'…신-구 권력간 갈등의 역사

[앵커]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당선인의 회동 불발, 초유의 일이 벌어졌죠.

대선이 끝나고 늦게 만난 적은 있어도, 만나기로 했다가 취소한 적은 없었는데요.

이번 주 여의도풍향계에서는 신-구 권력 간 갈등의 역사를 짚어보겠습니다.

이준흠 기자입니다.

[기자]

불과 0.73%p 차의 '초초초접전' 대선 결과가 말하는 민심, 국민 통합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게 조금 흔들리는 분위기입니다.

대통령과 당선인, 좀 늦게 만난 적은 있어도 만나기로 약속했다가 무산된 적은 없었는데요.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당선인의 회동, 예정 시간을 불과 4시간 앞두고 갑자기 취소됐습니다.

핵심 이유는 '대통령 인사권' 문제로 추정됩니다.

한국은행 총재를 비롯해, 선관위 상임위원, 감사원 감사위원 등 굵직굵직한 인사를 문 대통령이 퇴임 전 할 수 있는데요.

인사권은 대통령 권한이다, 정부가 바뀌는데 당선인과 협의해야 하는 것 아니냐, 이런 기싸움이 서로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분석입니다.

<박수현 / 청와대 국민소통수석(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서로의 참모들 이런 분들이 서로 왈가왈부하는 것은 이 자리를 편하게 만드는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김기현 / 국민의힘 원내대표> "이미 국민의 심판을 받은 낡은 문재인 정부의 철학에 따라 인물을 임명하겠다는 발상은 국민 뜻을 정면으로 거역하는 오만한 행동입니다."

신-구 권력인 현직 대통령과 당선인, 참 묘한 관계입니다.

일단 일로만 보면 넘겨줄 건 넘겨 주고, 도울 건 돕는 사이인 만큼 만나서 할 말이 참 많을 텐데요.

그래서 선거가 끝나고 열흘 안에 만나는 게 관례처럼 자리 잡았습니다.

민주화 이후, 회동이 가장 늦었던 건, 노태우 전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 18일만에 만났습니다.

이때도 분위기는 좋았습니다.

이후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의 첫 회동이 대선 이후 2일,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은 4일, 노무현-이명박,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은 각각 9일이 걸렸습니다.

현직 대통령 입장에서는 남은 임기를 매끄럽게 매듭짓고, 당선인 입장에서는 혼란없이 새 정부를 출범시키기 위해서 상호 협력이 꼭 필요하겠죠.

좋든 싫든 만나긴 만나야 하는 사이입니다.

이번처럼 '정권 교체'가 이뤄졌음에도, 정권 이양-인수는 '이런 것이다' 보여준 모범 사례도 있습니다.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은 선거가 끝나고 이틀 만에 만나 6개 합의사항까지 발표했는데요.

국제통화기금, IMF 합의사항 이행 등 경제난 극복에 뜻을 모으기로 한 것입니다.

특히 마지막 6번 조항이 눈길을 끌었는데요.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사면·복권에 의견을 같이했습니다.

사면권이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데, 대통령이 당선인한테 동의를 구하는 상징적인 장면이었습니다.

<신우재 / 당시 청와대 대변인(1997년 12월 20일)> "문민정부 출범 후 비리 사건으로 복역 중인 인사 중 국가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컸던 23명에 대해서도 새출발의 기회를 주기로 했습니다."

심지어 두 사람은 화요일마다 만나 대통령 취임 전까지 모두 8번을 만났습니다.

한국 정치사의 거목, '양김'답게 모범적인 협치 모델을 역사에 남긴 것입니다.

이런 좋은 사례만 있으면 싶은데, 이번 회동 불발을 보면서 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 당시를 떠올리는 분들 많으실 겁니다.

당시에도 정부 조직개편 등을 두고 정면충돌이 벌어졌는데요.

두 사람의 만남도 시작은 화기애애했습니다.

<노무현 / 전 대통령(2007년 12월 28일)> "의전은 아직까지 제가 가운데로 그렇게 돼 있는 모양입니다."

<이명박 / 전 대통령(2007년 12월 28일)> "끝나셔도 선임자시니까. 임기가 다 하셔도 선임자시니까."

하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이 통일부, 여성가족부, 해양수산부 등을 폐지·축소하는 정부조직 개편안을 내놓으며 충돌했는데요.

3개월간 대치 국면이 이어진 끝에 여야는 해양수산부는 폐지하고, 통일부와 여성가족부를 존치하는데 겨우 합의했지만, 결국 MB정부는 내각 구성도 제대로 못 한 채 임기를 시작했습니다.

여소야대 구도에서 국무위원 후보자들이 줄줄이 인사청문회를 넘지 못하면서, 대통령 주재 첫 국무회의에, 정족수를 채우기 위해 참여정부 국무위원을 빌려오는 촌극까지 빚었습니다.

MB정부에는 협치 실패, 야당에는 발목잡기라는 꼬리표가 뒤따른 건 당연한 수순이겠죠.

문 대통령, 윤 당선인 간에도 여성가족부 폐지를 둘러싼 갈등이 있죠.

거기에 대통령 집무실, 인사권, 탈원전 등 곳곳에 뇌관이 존재합니다.

봄꽃이 지기 전에 청와대를 국민께 돌려주겠다는 윤석열 당선인 측, 청와대 안 쓸 거면 우리가 그냥 쓰면 안 되냐는 문재인 대통령 측.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에 대해서도 "용산은 오욕의 역사가 있는 곳이다", 그렇게 따지면 "청와대는 조선 총독 관저가 있던 곳이다" 거칠게 맞붙었죠.

대통령 '마지막 인사권'도 시한폭탄입니다.

특히,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임기가 31일이면 끝납니다.

그런데 한은 총재 임기는 4년, 지금 새로 임명하면 차기 정부 임기와 대부분 겹칩니다.

일단 양측은 "빠른 시일 내 격의 없이 대화하는 게 국민에 대한 도리다", "청와대와 신뢰를 바탕으로 소통하고 있다"며 수습에 나서고 있는 상황입니다.

윤석열 당선인의 취임식은 5월 10일, 약 두 달이 남았습니다.

회동 불발은 자칫 앞으로 두 달이 순탄치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데요.

"인류의 가장 큰 비극은 지나간 역사에서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하는 데 있다"

우리에게는 나쁜 선례, 좋은 선례 모두 있습니다.

이번 정부의 끝, 다음 정부의 시작, 좋은 선례로 기록되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여의도풍향계였습니다. (humi@yna.co.kr)

#문재인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연합뉴스TV 기사문의 및 제보 : 카톡/라인 jebo23
(끝)


이 시각 뉴스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