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워라밸 때문에'…외면받는 필수의료 대책은? [탐사보도 뉴스프리즘]
[오프닝: 이광빈 기자]
시민의 눈높이에서 질문하고, 한국 사회에 화두를 던지며,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 가는 <뉴스프리즘> 시작합니다! 이번 주 <뉴스프리즘>이 주목한 이슈, 함께 보시죠.
[영상구성]
[이광빈 기자]
올해 이른바 'SKY' 정시 합격자 가운데 30%는 등록을 포기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대부분 의약학 계열로 빠져 나간 것으로 분석되는데요. 오직 의대를 목표로 한 이른바 'N수생'도 갈수록 늘고 있습니다. 초등학생 대상 의대 입시반까지 등장했다는데요.
의대 열풍은 이렇게 갈수록 강해지는데, 필수 의료분야와 지방에선 전공의가 부족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습니다.
먼저 박상률 기자가 오로지 의대만 바라보는 쓸쓸한 실태를 살펴봤습니다.
['SKY보다 의대'…초등학생부터 의대 입시반 준비 / 박상률 기자]
'SKY를 포기한다'
2023학년도 서울대와 연세대, 고려대 정시 합격자 가운데 3분의 1은 등록을 포기했습니다.
이른바 스카이에 합격했지만 등록하지 않은 사람이 1,343명,,특히 연세대와 고려대 자연계에선 무려 43%가 등록을 포기했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의·치대로 빠져나갔을 것이란 분석입니다.
<임성호 / 종로학원 대표> "서울대가, 연고대 이공계 전체 학생 중 절반 정도가 등록을 포기하고 있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는 거죠. 그럼 상당수 서연고 합격생들 중에서 이공계 등록을 포기한 학생들은 의대라든지 약대라든지, 치대·수의대쪽으로…"
기업이 후원해 취업이 보장된 반도체 관련 학과조차 정원 채우기가 힘들었습니다.
올해 연세대, 고려대, 서강대, 한양대의 반도체학과 등록 포기율은 155%,,정시 모집인원은 47명이었는데 다른 대학 등록을 이유로 떠난 학생이 73명이었습니다.
최초 합격자 전원은 물론, 추가 합격자 중에서도 이탈자가 대거 나온 겁니다.
대학에 입학해도 의대 진학을 준비하는 반수생들이 넘쳐납니다.
<이만기 / 유웨이교육평가연구소장> "요즘에 대치동 분위기나 학원가의 분위기는 자연계 상위권인데 의대를 노리지 않으면 '어, 쟤 왜 저러지?' 하는 그런 분위기, 자연계 최상위권 애들은 의대를 가는 것이 거의 당연시되는 분위기가 형성돼있습니다."
'미래가 불투명한 월급쟁이에 비하면 의사만 한 직업이 없다' 요즘 늦깍이 직장인 수험생들 사이에서는 수능을 '메디컬 고시'라고 부르기도 한다는데요. 의학 계열에 입학한 학생 가운데 26세 이상이 최근 4배 이상 늘었다고 합니다."
조직 생활에 적응을 못해서일까, 고소득이 간절해서일까.
개인의 선택을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바람직한 현상은 분명 아닙니다.
<구정우 / 성균관대 사회학 교수> "직업에 대한 불안정성이 커진 것 같아요. 직업 안정성이란 면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이런 것들은 우리 사회의 다양성이라든가 직업의 다양성, 이런 측면에서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죠."
일부 학원에선 초등학생 대상 의대 입시반까지 등장했습니다.
꿈과 직업에 대한 개념조차 정립되지 않은 아이들이 이런 과정을 거쳐 과연 사회가 필요한 의사로 커나갈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연합뉴스TV 박상률입니다.
[이광빈 기자]
의대에 인재가 몰리고 의사협회는 지금도 의사가 많다는 주장을 펴는데 정작 소아과, 산부인과, 흉부외과처럼 생명과 직결된 필수 핵심 진료과엔 의사가 태부족입니다.
지방사정은 더 심각한데요. 아무리 고액 연봉을 불러도 서울에서 먼 지역일수록 지원자를 구하기가 어려운 실정입니다.
차승은 기자가 보도합니다.
['경쟁률 410:1' 의대 열풍…필수의료는 구인난 / 차승은 기자]
2023학년도 대학입시 의대 평균 경쟁률은 410.5대 1.
수험생들의 의학계열 선호는 이렇게 심화하고 있지만 정작 현장에선 제때 치료를 못받아 숨지는 환자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2019년엔 부산에서 5살 남자 어린이가, 지난해 7월엔 심지어 서울의 대형 병원 간호사가 수술할 의사가 없어 목숨을 잃었습니다.
전공의들이 피부과, 성형외과처럼 돈 많이 버는 특정 과목으로 쏠리며 흉부외과, 소아과처럼 필수의료과엔 의사 부족 사태가 벌어지는 겁니다.
재작년 필수의료 과목 대부분의 전공의 지원율은 100%에 닿지 못했습니다.
특히 소아청소년과, 흉부외과는 각각 30%, 50%대까지 떨어졌는데요.
반면, 인기 과목인 재활의학과, 피부과, 성형외과는 200%를 넘거나 그에 가까웠습니다.
현장에선 고소득과 삶의 여유를 원하는 경향이 커진 탓으로 해석합니다.
<김동식 / 고대 안암병원 간담췌외과 교수>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많은데 그런 것들은 더더구나 피하려고 하는 경향들이 있는데…젊은 사람들에게 스트레스를 최소한으로 주기 위해서 많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지방으로 내려가면 더 심각합니다.
지방 의대생 43%가 수도권에 취업할 뿐더러, 고액연봉을 제시해도 지원자가 없습니다.
응급의학과 전문의 연봉을 4억원으로 1억원이나 올렸지만 지원자는 겨우 3명뿐이었던 속초의료원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중소도시는 종합병원이 많지 않아 공공의료원 의존도가 높은데 이마저 무너지면 의료서비스에 타격이 불가피합니다.
이미 전국 공공의료원 10곳 중 7곳 이상은 전문의 정원을 채우지 못한 실정입니다.
정부는 필수의료 위기 해결책으로 17년째 동결된 의대 정원 확대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 정원 증가는 오히려 인기 과목 쏠림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정부는 기피 과목 수가 인상안도 함께 발표했지만, 보다 대대적인 수가 개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신영석 /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 "손이 많이 가는 곳에 상대적으로 저보상되고 있는 그런 형태가 나타나고 있고…(의료 행위를) 균형 있게 보장할 수 있는 그런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2009년 흉부외과가 수가를 2배나 올려도 병원이 인력 충원을 하지 않아 여전히 기피 과목으로 남은 만큼, 병원 인력 기준 조정 필요성도 제기됩니다.
기피 과목 수가 인상이 소득 증대, 인력 충원, 업무 부담 완화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가져와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연합뉴스TV 차승은입니다.
[코너 : 이광빈 기자]
요즘 사교육 1번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일타스캔들'이 인기입니다. 사교육 전쟁터에서 벌어지는 로맨스를 다룬 드라마인데, 의대 진학을 둘러싼 현실의 단면을 시사해줍니다.
드라마에서는 사설학원에서 의대 진학을 목표로 하는 소수 정예반인 '의대 올케어반'이 갈등의 진원지로 등장합니다.
주인공 남행선의 딸인 고등학생 남해이는 의사에 대한 적성이나 소명의식과 무관하게 '올케어반'에 들어가려고 애를 썼습니다. 성적이 최상위권이라는 이유로 남해이는 자연스럽게 의대를 목표로 두게 됩니다. 주변 인물들도 이를 당연하게 여깁니다.
드라마에서는 남해이뿐만 아니라, 성적이 최상위권인 학생이면 당연히 의대를 목표로 하는 것처럼 그려졌습니다. 이런 풍경에 시청자들은 낯설어하지 않습니다. 이미 보고 들은 세태가 자연스럽게 드라마에 녹아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소득 수준과 직업 안전성, 사회적 지위 등의 측면에서 의사라는 직업이 최상위권에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2020년 기준 의사의 평균 연봉은 2억3천만원입니다. 개원의는 3억 가까이에 달합니다. 반면 한국 최초 우주발사체 '나로호'를 쏘아 올린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정규직 연구원은 평균 9천600만원을 받습니다.
소득이 2배 넘게 차이가 납니다. 더구나 의사는 정년도 없습니다.
여기에 의사 중에서도 수입이 높고 '워라벨'이 좋은 진료 과목 순으로 전공의 지원자가 몰리는 경향입니다.
해외 선진국들은 어떨까요. 학력 수준이 높아야 의대에 진학하고, 의사가 수입이 좋은 직업인 점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이공대 출신의 우수 인재 역시 높은 연봉이 보장돼 있습니다. 미국 기업들은 이공대 출신들을 우대합니다. 주요 IT와 생명과학 기업 연구원들의 연봉은 의사 부럽지 않습니다.
수출과 첨단기술 산업의 비중이 큰 우리 경제가 어떻게 인력에 대한 대우를 해야 할지는 치열하게 생각해볼 과제입니다.
필수의료 위기와 의사 부족에 따른 의대 정원 확대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자 정부와 정치권도 발 벗고 나섰습니다.
관건은 의사단체와 이해가 충돌한다는 것인데요. 아직은 꽉 막혀있는 실정이라 성사를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구하림 기자입니다.
[꽉 막힌 정부-의협 논의…의대 증원까지는 '첩첩산중' / 구하림 기자]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2년 넘게 미뤄졌던 정부와 대한의사협회의 의료현안협의체.
지난 1월 간담회를 시작으로 필수의료 강화 대책부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나가는 듯 했지만, 한 달 만에 암초를 만났습니다.
간호사 처우 개선을 골자로 하는 간호법 제정안과 의료인 면허 취소 기준을 규정한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되자, 의협 등 의사단체가 이에 반발하며 협의 중단을 선언한 것입니다.
<현장음> "간호사를 의료인에서 제외하라! 제외하라! 제외하라! 제외하라!"
하지만 의사단체들의 반발에도 필수의료 위기가 현실화화자 정부뿐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의대 정원 확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연일 나오고 있습니다.
국민의힘은 지난달 보건복지부로부터 의대 정원 확대 계획을 보고 받은 뒤, 현 사태의 원인으로 의사들의 집단 이기주의를 꼽으며 강도 높게 비판했습니다.
<성일종 / 국민의힘 정책위의장 (지난달 21일)> "근본적으로 의사들의 집단 이기주의 결과입니다. 그간 의사들이 수술의 수가를 높여달라고 주장하고, 의대 정원 확대는 막아왔습니다."
그러면 실제 우리나라 의사 숫자는 어떨까.
교육부에 따르면 의대 정원은 2006년 이후 17년째 의학전문대학원을 포함해 40개교 3,058명으로 동결돼있습니다.
이러다보니 나날이 늘어나는 의료서비스 수요에 비해 환자 한 명 당 의사 수는 세계적 기준과 비교해봐도 적은 축입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의 의료이용량은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38개 회원국 중 최상위 수준인데, 임상 의사 수는 OECD 평균치에도 미달합니다.
의대 졸업생 수는 평균의 절반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일반 의대 정원 확대나 군의학교, 공공의대 설립 등을 통한 의사 확충 노력은 번번이 수요자가 아닌 의사단체의 반발에 막혀 실패를 거듭해왔습니다.
필수의료가 위기를 맞은 지금도 상황은 마찬가지지만 특정과 쏠림 현상이나 지역간 의료서비스 격차처럼 대책이 시급한 문제가 산적한 상황.
정부는 의사협회와 다시금 원만한 논의를 이어가도록 노력하겠다고 하지만, 의협을 협의체 테이블에 다시 앉히는 일부터 결코 쉽지만은 않은 게 현실입니다.
연합뉴스TV 구하림입니다.
[클로징: 이광빈 기자]
2021년 지역 의과대학 정원의 40%를 지역출신 고교 졸업생을 선발하는 의무 할당제 발표 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의대 입시반까지 등장했습니다. 경제 성장이 둔화되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점점 더 커지는 사회적 상황을 반영해 의대 선호도가 높아진 것일까요.
고용정보원에서 발표한 2020년 '한국 직업 정보 보고서'에서 평균소득 높은 직업 1위부터 10위 중 8위만 빼고 모두 의사가 차지했습니다. 직업으로서 의사에 대한 인기는 더욱 올라가고 의사 단체들은 의사 수가 부족하지 않다고 하는데, 필수 의료과의 전공의 부족과 지방에서의 의사 구인난은 일상화됐습니다.
챗GPT에 '어떤 학생이 의대에 진학해야 하느냐'고 물어봤습니다.
챗GPT는 의대 진학을 선택할 때 고려해야 할 몇가지 요소를 제시했는데요.
첫번째는 의학에 대한 열정입니다. 의대가 길고 치열한 과정이라는 점 때문입니다.
두번째는 의대 공부를 뒷받침할 과학과 수학 과목에서의 좋은 성적입니다.
세번째는 환자 등과 원활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기술입니다.
네번째는 다른 사람에게 자상하고 공감할 수 있는 성격입니다.
다섯번째는 의료 스트레스를 관리하고 평생 학습을 해야 하는 직업적 이해도입니다.
챗GPT의 대답이 정답이 아니더라도 축적된 수많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보편적인 답변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요.
성적순에 따라 의사가 아니라 직업적 다양성을 선택해도 보상받을 수 있는 사회, 그리고 필수의료 분야에서 소명감에 대한 인정뿐만 아니라 보상도 충분히 받을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길 기대해봅니다.
이번주 뉴스프리즘은 여기까지입니다. 시청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필수의료 #의대열풍 #초등학생의대입시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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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연봉·워라밸 때문에'…외면받는 필수의료 대책은? [탐사보도 뉴스프리즘]
Y-Story뉴스프리즘
'연봉·워라밸 때문에'…외면받는 필수의료 대책은? [탐사보도 뉴스프리즘]2023-03-06 12: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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