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V 사극이나 조선시대를 다룬 영화를 보면 익숙한 장면이 있죠. 바로 죄인의 처형 방법 중 하나로 독약인 사약을 먹여 절명시키는 건데요.
이 사약의 주성분은 '부자'라는 한약재입니다. 부자에 들어있는 '아코니틴'이라는 식물성 독은 신경전달물질의 움직임을 방해해 신경과 근육을 마비시켜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하지만 한방에서는 이 부자를 약재로 쓰기도 합니다.
부자의 껍질을 벗기고 쌀뜨물에 넣는 작업을 거친 뒤 다른 약재와 함께 끓이면 독성은 줄어들고 진통과 염증을 억제하는 정반대의 효과를 내기 때문인데요.
이처럼 독으로만 알고 있던 물질이 오히려 사람에게 도움이 되기도 하는데요.
‘독도 잘 쓰면 약이 된다.’는 옛말도 있습니다.
동안 얼굴을 위해, 얼굴에 주름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보톡스' 주사에도 딱 맞는 표현입니다. 보톡스가 사실은 독성 균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보톡스의 주원료가 되는 독소는 단 1g만으로도 100만 명을 죽일 수 있을 정도로 지구상에서 가장 치명적인 독으로 꼽힙니다.
이번 [문형민의 알아BIO]에서는 이 강력한 독성 균이 어떻게 보톡스가 됐는지, 또 국내 기업들이 왜 너나할 것 없이 보톡스 시장에 뛰어드는지 등에 대해 자세히 알아봅니다.

◇ 식중독 일으킨 균주에서 발견한 치료 효과
보톡스는 일반인들 사이에서 보통명사처럼 불립니다. 하지만 이는 미국 제약사인 애브비의 제품명으로, 주름 개선에 사용되는 동일 계열 약물의 정확한 명칭은 ‘보툴리눔 톡신’입니다.
보툴리눔 톡신은 보툴리누스균에서 추출한 생물학적 독성 단백질인데요.
19세기 초 독일에서 소시지를 먹은 사람들이 식중독으로 대거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상한 소시지에 신경마비 증상을 일으키는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이후 1895년 벨기에 미생물학자 에밀 피에르 반 에르멘젬 박사가 연구를 통해 상한 소시지와 이를 먹고 사망한 사람의 조직에서 이 균주를 분리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보툴리눔의 어원이 바로 검은 소시지를 뜻하는 라틴어 '보툴루스'에서 유래했습니다.
이후 보툴리눔 톡신에 대한 많은 연구가 이뤄졌고 이 균주가 신경에 작용해 근육을 일시적으로 마비시키는 특성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 특성을 이용해 보툴리눔 톡신을 치료제로 개발하가 위한 각종 임상시험들이 진행됐습니다.
1989년에 최초로 미국 식품의약품청(FDA)으로부터 안검경련과 사시 치료 목적으로 승인을 받았습니다. 2001년엔 미간 주름 치료에 대한 허가가 이뤄졌고요.
이후 보톡스는 미용성형 영역에서 눈가 주름과 사각턱 개선 등으로 사용 가능 범위(적응증)를 확대했습니다.
치료 영역에서는 만성 편두통, 상지 경직, 경추 근긴장 이상, 중증 겨드랑이 다한증 등에 대해 승인을 받았습니다.

◇ “국내 축사·썩은 통조림에서 균주 찾았다”
보툴리눔 톡신 시장에서 균주 확보 기술력은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로 여겨집니다.
균주 간 미세한 차이가 제품 차별화의 핵심 요소가 되기 때문인데요.
어떤 균주는 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의 방출을 더 강하게 차단하는 특성을 보이는 반면, 다른 균주는 방출 차단 효과가 더 약하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균주의 차이는 곧 보툴리눔 톡신 제품의 효능과 지속 시간의 차이로 이어지며, 환자의 만족도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올해 2월 대웅제약은 국내 토양에서 보툴리눔 톡신 균주를 발견하고 분리 동정에 성공했다고 밝혔습니다.
오염이 심하거나 폐사 등이 발생한 국내 축사를 중심으로 시료 채취를 진행하고 한 샘플에서 새로운 균주를 발견했다는 겁니다.
휴젤이라는 기업은 보툴리눔 톡신 균주를 부패한 통조림과 폐기한 음식물 쓰레기, 콩 통조림 등에서 발굴했다고 전했습니다.
현재 국내에서 승인된 보툴리눔 톡신 가운데 메디톡스, 제테마, 이니바이오 등은 해외에서 톡신 균주를 취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특히 이들 기업의 경우, 균주에 대한 출처가 명확하다고 인정을 받았는데요. 미국이나 스웨덴 등 해외 기관에서 균주를 정식으로 도입했기 때문입니다.
그 외 기업들은 마구간의 토양이나 통조림, 벌꿀, 훈제 또는 소금에 절인 생선 등 한국에서 균주를 자체 발굴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 격전지 된 보툴리눔 톡신 시장 왜?
미국에서 보톡스의 등장 이후 세계적으로 경쟁 품목들이 속속 등장했습니다.
유럽 시장에서는 프랑스 입센의 디스포트(1999년), 독일의 제오민(2009년) 등이 허가를 받고요.
국내에는 메디톡스의 메디톡신(2006년), 휴젤의 보툴렉스(2009년), 대웅제약의 나보타(2013년) 등을 시작으로 현재는 18개에 달하는 국산 보툴리눔 톡신 제품들이 있습니다.
보툴리눔 톡신 제품이 수익성이 뛰어나다 보니 여러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보톡스 경쟁’에 속속 뛰어들고 있는 건데요.
최근 GC녹십자그룹이 자회사인 녹십자웰빙을 통해 에스테틱 기업 이니바이오의 경영권을 포함한 지분을 취득했습니다. 이 기업은 보툴리눔 톡신 제제에 특화된 기업으로, GC녹십자웰빙의 시장 진출을 의미합니다.
동국제약은 한국비엔씨와 손잡고 '비에녹스주'를 판매할 계획인데요. 비에녹스주는 지난해 3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품목허가를 받았습니다.
기존 업체의 입지가 견고해 후발주자가 자리를 잡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데도, 여러 제약사가 눈독을 들이는 것은 높은 수익성과 시장 성장을 기대할 수 있어서겠죠.
실제 국내 보툴리눔 톡신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3개 업체의 지난해 실적만 봐도 이유를 엿볼 수 있습니다.
지난해 1조2,654억 원으로 연간 최고 매출액을 기록한 대웅제약은 ‘나보타’에서만 1,864억 원을 벌어들였습니다.
휴젤의 경우에도 매출 3,730억 원 중 2,016억 원을 보툴렉스를 통해 올렸습니다. 메디톡스는 연매출 2,286억 원 중 톡신 매출이 1,093억 원을 차지합니다.
무엇보다 글로벌 시장 규모가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어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뛰어들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세계 시장 규모는 지난해 86억5천만 달러에서 연평균 9.57% 성장해 2034년 215억7천만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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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형민(moonbro@yna.co.kr)